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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r 24. 2023

비위관

어머니 몸에 더해진 줄

2022.3.22.(화)

병원일과는 규칙적이다. 6시 식사 전에 채혈, 엑스레이, 심전도 측정, 식전 약 복용 이렇게 반복된다.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침상 옆에 있는 기계들과, 어머니 몸에 연결된 튜브, 몸에 꽂힌 주삿바늘이 오늘이라고 익숙해지지는 않았다.


옷을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 때 거추장스럽게 매달린 그것들이라도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그 주삿바늘 말고도 어머니 몸이 감당해 온 주삿바늘 자국 때문에 윤기를 마른 피부가 더 애처로워 보였다.


20일 일요일에 조금 차도를 보여, 어제는 승압제를 조금 낮춘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인지 오후에 어머니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게 보였다. 어제는 말씀도 하고, 표정도 있었는데 오늘은 의식이 없어 보이는 상태로 눈을 떠도 아무 기운도 없고 입술도 힘을 잃어 아래로 쳐져 그 사이로 침이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삼킴 장애 검사를 한다고 어머니를 건물 1층 검사실로 모셔가야 했다. 병원은 많은 환자들이 오가는 곳이니 어머니의 상태를 감안해 줄  수가 없다. 그저 예약된  시간에 맞춰 가야 했다. 활동성을 거의 잃은 어머니에게 검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어머니는 보청기가 없으면 청각장애인이라 말을 알아듣기도 어려운데 전 날 시트를 갈면서 보청기 하나를 잃어버렸던 거다.


자책감에 시달렸다. 보청기를 넣고 주파수를 맞추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 정작 사용도 잘 못하긴 했지만, 어머니의 소중한 기능을 내가 잃게 만들었다는 느낌에 괴로웠다. 휠체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 검사실에서 병실로 오는데도 애를 먹었다. 호흡이 좋지 않아서 휠체어 뒤에 큰 산소통까지 매달고 있어서 내 힘으로 그것들을 운전하기 버거웠다.


검사결과 어머니의 삼킴 장애 정도에는 비위관,  쉬운 말로는 콧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오후, 젊은 의사가 와서 어머니에게 콧줄을 넣었다. 3월의 대학병원, 새로 일을 시작하는 긴장감이 손끝과 표정에 어려있었다. 환자의 협조가 있어야 쉽게 잘 들아간다는데, 3차 시도 끝에야 성공했다.


어머니 힘내시라 응원을 하긴 했지만, 어머니에게 콧줄이 들어가는 동안, 그리고 어머니코에 연결된 콧줄을 보면서, 어머니가 이것을 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어 축 늘어진 어머니가 유일하게 한  말,

'지치다'.


그렇게 지친 어머니를 때가 되자 일으키고 콧줄에 연결된 피딩백으로 식사를 드렸다.



밤 10시, 어머니가 잠을 자는 것인지, 그냥 눈을 감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다른 움직임 없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병실을 나왔다. 제주대병원 복도를 쏘다녔다. 어디든 걸음을 옮기며 걷고 싶었다. 1층부터 5층까지 계단을 걷고, 구석복도까지 들어가 어떤 기능의 방들이 있는지 명패를 확인하고, 복도 그림도 찬찬히 올려다보며 적막한 기운을 누렸다. 그러고 나서 병실로 돌아갔을 때 어머니 머리 옆쪽에 빠져나온 콧줄을 발견했다.


심장이 쿵.

'어머니, 이러면 어떡해? 내일 또 그 고생을 하려고?'

속상함이 훅 올라왔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당신 육신에 벌어진 일을 자각하고 있는 어머니는 스스로 콧줄을 거부한 것인가?

코와 위장으로 들어간 콧줄의 불편한 이물감이 어머니의 힘을 끌어모아 콧줄을 뺄 정도로 못 견딜만한 것인가?


어머니의 가래가 심해져서 간호사님에게 석션을 부탁했다. 어머니의 콧줄이 빠진 것도 말했더니, 장갑을 끼우거나 손을 침대 가드에 묶어놓으라고 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그 사이로 한 숨이 새어 나왔다.


그 말을 되풀이해서 었다.

'장갑을 끼우거나 손을 침대 가드에 묶어 놓으라고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마비가 조금 덜한 손을 쓸 수 있다는 게 어머니에게는 약이 아니라 독이었다.

그 손마저도 못쓰게 만들어야 어머니를 살린다니,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워져 잠든 어머니 옆으로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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