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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r 27. 2023

퀘렌시아

나의 그리고 어머니의  

2022. 3. 23.(수)

어제오늘 제주의 날씨는 맑고, 공기는 달았다. 어제는 병원 앞마당과 병원 건물 언저리를 산책하고 돌아왔다.  오늘은 제주대학교병원 마당을 벗어나 조금 멀리 경사로 위쪽에 자리 잡은 장례식장 뒤편 숲 속까지 갔다.  숲은 장례식장 주차장을 만들면서 깎여진 모양인지, 주차장과 숲 사이 커다란 장식석이 경계를 이룬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돌을 타고 올라가 나무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아침에  어머니3차 시도 끝에 콧줄 삽입에 성공했다. 이 과정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게 괴로웠다. 간병문제로 전화통화하면서 오빠와 대립했다. 이 대립이 나를 힘들게 했다.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싶은 게 나의 마음인데 오빠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퇴원을 반대했다.


며칠간 병원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 쇠잔해져 가는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하는 게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빠 현실적으로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오려면 준비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며 반대했다. 주간병인의 주장에 내가 졌다. 그래서 병실을 나설 때 나의 우울 지수가 치솟고 있었다.


맑은 햇빛 아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피부에 닿는 햇살의 온기.  바람의  감촉이 몸의 감각을 깨운다.

아. 좋다.

내딛는 걸음이 경쾌한 리듬을 만든다. 껑충껑충 장식석을 딛고 올라. 축축한 흙바닥 위에 선다. 숲이다.  숲 속을 걸어 들어간다. 그곳에서 나무냄새, 흙냄새, 축축한 습기 냄새를 맡는다. 나뭇가지 사이로 쪼개어진 햇살이 비추고, 정적 가운데 새들의 지저귀김이 들린다.

내 정신은 무거운 굴레를 벗고 맑아지고 밝아진다.


나의 퀘렌시아를 발견했다.

퀘렌시아, 투우 경기에서 지친 소가 힘을 되찾는 공간이며 피난처. 몸과 마음이 치쳤을 때 휴식을 취하는 공간. 걷다가 멈춰 서서 그대로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음미하고, 코로 들어오는 모든 냄새를 음미하고, 눈을 떠서 내 시야를 채우는 나무와 하늘을 바라보며 치유의 시간을 누렸다. 자연의 질서 속에서 나도 한 점 티끌이 되자, 서운하고 괴로운 감정들도 먼저처럼 작아져 날아갔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인생이다. 언젠가 끝이 나고 어머니도, 나도,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괴로운 이 시간도 언젠간 끝이 날 것이다. 오늘 살아 있는 순간에 감사하며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살자고 생각했다. 내 연료탱크에 기름을 채운 것처럼 힘차게 다시 병원 건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2006년 제주한국문인협회에서 실시한 제16회 제주신인문학상 시조부문에서 '환장하는 아우성'으로 입선하여 시인으로 첫 발을 디뎠다. 어머니 나이 75세였다. 읍내 도서관에서 준비한 시 쓰기 강좌에 등록하고 좋은 선생님의 배려와 응원 덕분에 어머니는 즐겁게 시를 썼고, 그 끝에 용기를 가지고 문학상에 도전한 결과였다. 내 어린 기억 속에 어머니가 글을 쓰던 시기에서 20여 년이 지난 시점이다.


어머니의 꿈이 이루어졌다. 어머니의 필생의 소망이자  치유의 작업이었던 글쓰기.

글을 쓰는 순간, 거기가 어디이던 그 공간이 바로 어머니의 퀘렌시아였다.


때때로 어머니가 자신만의 퀘렌시아에 너무 깊이 들어가, 어린 딸에 무심한 것이라 생각하며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었다. 저 열렬한 관심과 몰입을 자식에게도 나누어주었으며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조금 정신이 돌아온 어머니에게 태블릿 피씨로 검색한 어머니의 기사들을 보여드렸다. 조금이라도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마음의 고통을 덜어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천천히 기사를 읽어드리기도 했다. 얼마나 잘 알아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지쳐 보였던 어머니 눈에 여린 생기가 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계아라는 인물의  정체성은 시인이라는 직함이 완성시켜 주었다. 시인으로 인정받은 후 어머니는 모든 것을 기쁘게, 행복하게 받아들이셨다. 하지만, 이 병은?


오빠가 얼마 전 간병할 때, 어머니에게 말했다고 한다.

"빨리 나상 이거 아팠던 것도 수필로 씁서. 책사랑모임에 내어."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듣고, 정말 그래야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어머니는 그럴것이다. 어머니는 물욕. 자식욕심 없는 삶을 사셨지만 신은 공평하셔서 어머니 생의 열망을  다른 한 곳. 글욕심에 몰아넣으신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부엌바닥에서 시작된 글쓰기는  삶을 지탱해준 퀘렌시아이자, 모든 것을 녹일 수 있는 꿈의 용광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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