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Mar 28. 2023

폭풍우

나무처럼 비바람을 견디고 서 있겠다 다짐했지만  

2022. 3. 25. (금)

제주대학교병원 5층 식기반납실에서는 한라산이 가까이 선명하게 보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식기를 반납하러 갔는데, 한라산 너머에서 거대한 검은 구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쪽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었다.


내가 주시하는 몇 분 사이 건물을 지나는 바람의 강도가 세어지는 것이 보였다. 음험한 구름의 소리 없는 거친 움직임과 내 눈앞에서 요동치는 나뭇가지들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얼마간 서 있었다. 저 멀리에서 여기까지 내달린 바람이다.


폭풍우가 오고 있다.


내일 나는 오빠와 교대를 한다.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과 더불어, 간병인이 지내기에 열악한 환경 때문에도 지쳐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밤은 더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통증과, 불면, 알아듣지 못할 혼잣말, 석션, 땀이 어머니의 밤을 다스렸다. 그런데 오늘 밤은 거기에 하나 더, 열이 오른다.


갑자기 간호사님들이 바빠진다. 병실의 천장등은 꺼져있는데, 엑스레이 기계가 들어온다. 채혈주사 바늘이 어머니의 팔다리 여기저기를 찌른다. 오늘 어머니는 내 눈앞에서 스무 번은 족히 바늘에 찔린다. 혈관을 찾지 못해 몸 여기저기를 찌르다가 결국 허벅지 안쪽 동맥에서 피를 뽑았다. 호흡기 치료기계가 들어오고, 해열제 주사가 추가된다.


처음 보는 다리 정맥 압박기가 등장한다. 푹푹 바람이 들어갔다가 후욱 바람이 빠졌다가를 반복하며 어머니 종아리를 쥐어짜는 기계다. 어머니 몸에 매달린 줄이 열개가 된다. 한바탕 폭풍 같은 시간 뒤에 잠시 고요가 찾아온다. 누운 어머니를 보다가 나는 병실을 나온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다.


병원건물을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복도 한끝에 서서 비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다본다. 쏟아붓는 장대비, 야자나무 이파리를 헤집는 거친 바람. 저항할 수 없는 힘에 굴복하는 모습인가, 저것은?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당하고 사는 뿌리 박힌 나무의 운명이라면.


사람도 피할 수 없는 것들이 있겠지.

그냥 견디어 내는 것이 최선의 답인 거.

그렇다면 견디어야지.


병실로 돌아왔다. 어머니 병상 발치에 기계가 있다. 기계에서 나온 선은 어머니 가슴으로 가 닿는다. 기계 모니터의 초록선은 어머니의 심장에서 보내는 움직임을 따라 규칙적으로 솟아오른다.


저 초록선이 평평해지면, 그때 어머니는 약해진 육신에서 놓여나실 거다. 

나는 초록선의 움직임이 멈추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죄스러움에 몸이 쪼그라든다.


눈물이 난다.

어머니를 껴안고 운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해야지.

어머니의 죽음을 향한 한발한발이 서글프다.


이전 08화 만나러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