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이런 상장, 받아봤나?

점선면(이하 점): 오~, 스승의 날?

이李씨(이하 이): 코로나 시국을 지나고, 이제야 학교가 학교다워지는 것 같아. 아이들이 보여. 작년에는 휴직이었고, 그전 두 해는 코로나로 학교가 어수선했지. 그 기간 동안 중3 담임을 했는데, 원격수업은 마음에도 거리를 만드는지, 뭔가 아이들이 멀게 느껴지더라고.

점: 흠, 상장받고 기분 좀 좋았겠는데?

이: 뭐, 내가 잘했다기 보다는, 이 상장 문구를 쓴 친구의 마음가짐이 좋은 덕분이지. 생각해 준 마음이 고맙고.

학급 아이들 앞에서 반장이 낭독하고, 전해주는 걸 두 손 모아 허리 숙여 받고 90도 각도로 아이들에게 인사했어.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중요해. 감사의 썰說도 좀 풀고. 좋은 분위기였어.

점: 교직 오래 했으니까 상장 설設도 좀 풀어봐.

이: You read my mind. 내 맘을 알아줬네. 넌 역시 좋은 친구. 훗.

2015년에 생애 첫 중3담임을 했어. 중3 진학은 또 새로운 업무기도 했고, 다다사다다난 한 해여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2016년은 아이들하고 케미가 너무 좋았던 거야. 마음의 여유도 생기고 그래서 그 친구들 졸업할 때 조금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했어.

점: 그 이벤트가 상인가?

이: 음. 문집도 만들었고, 졸업식 때 줄 상도 4쪽 모아 찍기로 인쇄해서 문집에다가 실었지. 그래서 아직도 그때 상장들을 확인할 수 있어. 그때 졸업식장에서 아이들이 적어도 두 장씩의 상장은 받았는데, 하나는 본인이 직접 주는 셀프상장이고, 하나는 학급친구들과 담임인 내가 주는 상이었어.

점: 학급친구들과 담임이 주는 상은 어떤 거야?

이: 아이들에게 롤링페이퍼를 작성하라고 시키고 받아서 읽어보니, 친구들에게 어떤 부분이 인정받는지 보이는 거야. 그래서 학급친구들과 내 이름의 상장이긴 했지만 내가 롤링페이퍼의 내용을 바탕으로 상장 문구를 만들었지.

그리고 졸업식 당일날 부모님 앞에서 이 상장들 모두 낭독하고 수여했어. 내가 그럴 거라고 분명 말했는데, 설마 했다가, 몇몇 아이들은 엄청 당황하더라고. 좀 더 잘 쓸 걸 하는 후회를 했을 지도. 훗.

교실 대형모니터에 상장 제목 잘 보이라고 슬라이드도 띄워줬네.

쭉, 정리해 볼 테니까, 감상해 봐.

참고, 전부 남학생들이야.

1탄. 셀프상장

(1) 세계 최고 훈남상

위 학생은 잘 생겼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 너무 잘난 상

위 학생은 성시경보다 노래를 잘 부르고 잘 생기고 키도 크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3) 보상

위 학생은 중학교 3년 내내 열심히 노력했으며 그에 맞는 결과를 얻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4) 어얼리 버드상

위 학생은 자주 아침에 학교에 제일 먼저 등교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5) 비상

위 학생은 고등학교를 향해 비상할 준비가 되어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6) 00 중학교 떠오르는 샛별 울트라 슈퍼파워 그레이트 엑설런트 제너럴 호날두 메시 즐라탄 보다 더 미친 건 손흥민 제왕 대통령 다이아몬드 반짝반짝  샤이니 누간 너무 예뻐 링딩동 수퍼 제너럴 해피 호날두 상

위 학생은 00 중학교 반장 중에 가장 훌륭한 반장이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7) 7반 졸업상

위 학생은 7반에서 졸업을 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8) 세상

위 학생은 이 세상에 살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9) 봉사상

위 학생은 3년 동안 바르게 봉사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0) 학교 생활상

위 학생은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고 친구들과 잘 지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1) 운동상

위 학생은 1년간 열심히 운동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2) 관상

 위 학생은 왕이 될 관상을 가졌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3) 빵 제공상

위 학생은 지난 1년 동안 3학년 7반 학생들에게 빵을 제공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4) 크루아상

위 학생은 탄수화물 섭취가 필요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5) 울상

위 학생은 졸업식을 생각하면 울음이 나오려 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6) 옥상

위 학생은 옥상에서 세상을 보듯이 축구를 할 때 멀리 보는 시야가 넓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7) 책상

위 학생은 1년 내내 책상에 열심히 붙어 있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8) 불상

위 학생은 지각을 하지 않고 학교를 꾸준히 나왔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9) 타박상

위 학생은 올해 다리에 많은 멍과 흉터를 남겼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0) 밥상

 위 학생은 밥상같이 꿀 같은 사람이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1) 보상

위 학생은 중학교 3년 과정을 후회 없이 수행하고 노력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2) 개근받고 싶은 상

위 학생은 개근상을 너무 받고 싶어 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3)경코에 멋진 랩과 스웩으로 감동을 주는 상

위 학생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여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4) 책상

위 학생은 3학년 1년 동안 책을 열심히 읽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5)급 식상

위 학생은 학교에서 급식을 좋아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6)上

위 학생은 멋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7) 유민상

위 학생은 잘 생기고 완벽하며 착하고 공부도 잘하기 때문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8) 행복한 상상

위 사람은 2016년 3학년 7반 담임으로서 7반 학생들이 졸업 후에 성장하는 모습을 응원하며 또 아름답게 자랄 것을 상상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탄. 학급친구&담임선생님 상장

(1) 우리 반 얼굴마담상

위 학생은 3학년 7반의 1번으로서 늘 우리 반의 선두에서 7반의 얼굴 역할을 하였으며 음악 디제이 역할도 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 아름다운 인성상

위 학생은 성실함과 배려 등 아름다운 인성으로 친구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았으며, 말없는 도움을 줄줄 아는 7반의 소금 같은 역할을 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3) 컴퓨터 금손 상

위 학생은 7반의 컴퓨터도우미로 문제가 생기면 잘 고쳐내고, 책임지고 관리하는 등 컴퓨터 금손 역할을 해 왔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4) 첼시 사랑상

위 학생은 축구에 대한 사랑, 특히 첼시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쳐있으며 학급대표 축구 선수로 최선을 다했기에 이상을 수여합니다

(5) 듬직함과 유머상

위 학생은 형님 같은 포스로 친구들을 넉넉하게 품어주고 재기 넘치는 웃음코드로 친구들에게 웃음을 선사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6) 잘 생기고 멋진 반장 상

위 학생은 타고난 잘생김이 흘러넘치고 반장으로서 훌륭한 반으로 이끄는데 크게 공헌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7) 말없는 시크남상

위 학생은 평소에 말이 많지는 않지만 소리 없이 웃는 시크한 매력을 발산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8) 축구 사랑상

위 학생은 축구에 대한 사랑을 가슴 가득 품고 있고, 최고의 플레이를 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축구를 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9) 게임왕좌상

위 학생은 게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크며 남다른 게임실력으로 인정받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0) 수학 대장상

위 학생은 천재적인 수학두뇌를 소유하여 수학문제를 신들린 듯 풀어내며 친구들에게 수학을 잘 알려주었으므로 이 상을 수여합니다

(11) 넓은 어깨 따뜻한 마음상

위 학생은 태권도로 다져진 태평양 같은 넓은 어깨를 소유하였으며 마음은 이에 못지않게 따뜻하고 넓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2) 어울림상

위 학생은 슬림한 다리로 어떤 바지도 잘 소화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는 마음을 가졌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3) 아티스트상

위 학생은 노래도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리는 예술인의 감각과 재능을 가졌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4) 뇌섹남상

위 학생은 공부를 하기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진 뇌를 소유하고 있어서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5) 이벤트 플래너 부반장 상

위 학생은 착한 마음으로 반을 위해서 부반장으로서 행사 때마다 필요한 연락과 준비물 챙기기등 학급행사를 기획하는 능력이 뛰어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6) 축잘알 상

위 학생은 축구를 좋아하며 축구를 잘하며 축구를 잘 알고 학급대표로 출전하는 등 축구선수로 활약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7) 끼 부림상

위 학생은 좋은 목소리와 연기력, 무용 실력과 시크함을 갖추고 7반의 공연에서 센터역할을 하는 등 자신의 끼를 열심히 부리며 7반을 즐겁게 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8) 매력적 웃음소리상

위 학생은 원비를 잘하고 원비가 잘 될 때 혹은 기분이 좋아서 웃을 때 매력적인 소리로 웃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19) 단점 없는 게 단점인 상

위 학생은 공부, 교유관계, 축구, 노래 등 뭐든 잘 해내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0)공잘상

위 학생은 공부를 잘해왔고, 잘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무척 잘할 것으로 보이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1) 우리 반 최고 센터백상

위 학생은 7반의 센터백으로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으며 자신의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었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2) 세계최강 다리상

위 학생은 강인한 다리를 가지고 족구대회에서 7반의 승리를 이끄는데 공헌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3) 축구짱 상

위 학생은 7반의 스트라이커로 중요 경기 때 골을 넣는 활약을 하는 등 축구를 무척 잘하기에 이상을 수여합니다

(24) 애니사랑상

위 학생은 애니메이션과 일본소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남달라 많은 책과 영화를 보았으며 수학을 잘하고 급식도 잘 도와주는 모습까지 칭찬할 만 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5) 황금바늘상

위 학생은 개성 있는 패션감각과 신들린 십자수 바느질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6) 네이마르 잘생김상

위 학생은 가만히 있어도 잘 생김이 흘러넘치고 축구를 할 때는 네이마르만큼 멋지기에 이상을 수여합니다

(27) 웃음유발상

위 학생을 때려주고 싶을 만큼 샘이 나는 유머 감각으로 7반에 웃음을 선사하며 친구들의 사랑을 받았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28) 콩깍지상

위 사람은 2016년 3학년 7반 담임으로서 7반만큼 사랑스럽고 훌륭한 반은 없다는 콩까지를 쓰고 27명의 콩알 같은 학생들과 함께 하였기에 이 상을 수여합니다

점: 애썼다.

이: 아휴.. 쓰다 보니 많아서 손가락이 쫌 아팠지만, 추억이 새록새록.. 좋았네.

점: 그다음 해는?

이: 2017년부터는 부장업무를 맡아서 담임을 안 했어. 그러다 학교 옮긴 게 2020년인데, 코로나 시작이었지.

 오랜만에 담임 같은 담임 생활 중이야.

같은 공간에서 얼굴 마주 보고 수업도 하고, 조종례도 하고, 학교행사도 해야 미운 정, 고운 정들면서 아이들이 보일 수밖에 없어. 지식의 공부는 혼자서도 되지만, 공동체성을 키우고 사람들 속에서 사회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관계 속에서 가능한 일이라, 나는 학교의 잠재적인 교육기능 중에 긍정적인 영향에 더 가치를 두고 싶어. 누군가는 비관적인 감정이 더 클 수도 있겠지만.

내가 교육현장에 있다 보니, 비관적인 감정과 견해는 나를 힘들게 하고, 내가 가진 부정적인 감정이 표출되면 결국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과 아이들에게 옮아갈 수밖에 없거든. 의지적으로 긍정을 향해 가는 거지.

점: 쫌, 괜찮아 보이는 자세군. 이 친구들 이제 청년들이겠지?

이: 음. 청년이 되었지. 5월 15일에 저기 상장받은 이들 중에 한 명이 날 찾아왔었어.

점:오~!

이: 그 친구에겐 내가 마지막 담임이야. 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얼마 못가 그만뒀거든. 다른 아이들은 해가 바뀌면서 새담임들도 계속 만나고, 그러면서 나를 잊는데. 그 애에게는 내가 온전한 학창 시절의 마지막 담임이었던 거라. 자기가 받은 상장얘기도 했어.

점:... 그래서 좋았어?

이: 음... 반갑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은 아팠지.

나는 내가 오래 기억되지 않아도 좋아.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은 담임들, 선생님들을 만나서 나를 잊어버리게 되면 그게 더 좋겠어.

추억할 때도 그저 그 시간들이 좋았던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그리고, 안 받고 싶은 상이 있는데, 이건 잘 피해 가야 해.

점: 뭔데?

이: 밉상. 히히.

오늘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