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May 19. 2023

넌 나에게 실망감을 주었어

영화와 원작 사이_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The Guernsey Literary and Potato Peel Pie Society(BLOOMSBURY)

이李씨(이하 이):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길래, 유튜브에서 요약리뷰영상을 찾아봤지. 원작자가 이런 각색에 동의했을까 싶더라고.


점선면(이하 점): 책 읽고 나서 영화 보고 실망한 게 한두 번인가?


: 그래도, 이번 경우는 뭐랄까, 소설의 정수 core가 왜곡된 느낌이었어. 전반적인 느낌이 주는 색채감이 있다고 쳤을 때, 톤이 너무 많이 달라서.


: 책은 어땠는데?


: 음. 2차 세계대전 독일군에게 점령당했던 영국령 건지섬사람들 얘기라서,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암울하고 슬픈 톤이지만,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느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인간적인 따뜻함이 느껴지지.


메인 화자인 줄리엣이 또 얼마나 위트가 있는지, 소설에서 작가로 나오는데 작가다운 글솜씨, 사람과 삶에 대한 호기심, 솔직한 감정 등 읽다 보면 정말 사랑스러워.


줄리엣 덕분에 싱싱한 색감이 느껴져. 건지섬의 자연풍광도 가슴 뻥 뚫리게 시원스럽고 아름답게 상상이 되고.

 

: 흠, 아무리 잘 써진 책도 영화로 만들면 한계가 있지. 네가 말하는 위트 같은 걸 영상에서 표현하기는 좀 어렵지 않겠니? 그리고 네가 본 건 짧게 요약된 거라, 영화를 제대로 봤다고 말하기도 그렇잖아.


: 그렇긴 하지. 그래도 18분짜리 영상으로도 알 수 있는 건 알 수 있다고.


: 그럼, 뭐가 제일 실망스러웠던 건데?


: 줄리엣은 젊은 여성 작가야. 그런데, 줄리엣이 추적하는 한 명의 여성이 있어. 바로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 시작된 사건에 중심에 있는 여성, 엘리자베스.


 북클럽 사람들은 엘리자베스를 무척 사랑했고, 그리워하고, 그래서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줄리엣에게 열정적으로 전해주지.


줄리엣도 사람들이 들려주는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에게 매료되지.


그리고 건지감자껍질 파이 북클럽 사람들은 독일 점령 시기에 겪었던 자신들의 이야기가 줄리엣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해서 자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부지런히 편지로 적어 보내.


: 음. 이 책이 편지글 형태로 되어 있었지?


: 줄리엣과 그녀의 친구 소피, 소피의 오빠이자 줄리엣의 출판 에이전트 스티브, 그리고 건지감자껍질파이 사람들, 그리고 그 주변의 인물들이 서로 주고받는 편지들로만 되어 있는데도, 소설이라는 흐름으로 만들어져.

신선하고 재미있었지.


인물들이 각자 자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이고, 또 중심에 엘리자베스로 이어지고.


: 네가 영화를 보고, 실망할 만도 했겠다. 사람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변화, 생각들이 어떻게 영상으로 잘 표현되겠니? 줄리엣의 위트가 제대로 나오기가 힘들지.


: 그게 너무 아쉬웠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전체적인 톤의 변화인데, 영화에서는 엘리자베스, 그리고 그녀에 대한 건지섬사람들의 마음이 원작과는 다른 색채라는 게 제일 속상했어.


원작에서 엘리자베스는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여전히 사랑의 불을 지피는 애정의 대상이고, 공개적인 그리움의 대상인데, 영화에서는 건지섬사람들이 줄리엣에게 엘리자베스에 대해서 언급을 회피하고 거절하는 듯이 그려졌거든.


: 영화에서는 왜 그런 설정이야?


: 엘리자베스가 독일군 점령시기에 독일장교와 사랑에 빠져서 아기를 갖게 되고, 아이가 어렸을 때 도망자 유태인 소년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수용소에 잡혀가거든.


그래서 엘리자베스의 딸, 키트는 건지감자껍질 북클럽 사람들의 손에서 자라나고 있는데, 줄리엣이 자꾸 엘리자베스에 대해서 캐묻고 다니면 키트의 출생이 밝혀질까 봐 쉬쉬하는 걸로 나와.


그러니, 원작에 있던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의 생생한 색채감이 완전히 죽어버린 느낌이랄까.


: 내가 원작자라도 실망하겠는데.


: 그래도, 뭔가 절차를 거쳐서 영화화되었을 거긴 한데, 아쉬움이 많아.


이 책을 쓴 매리 앤 쉐퍼는 죽기 전에 세상에 의미 있는 책 한 권이라도 남기길 원했다는데 늦은 나이에 쓴 이 소설이 첫 소설이자 마지막 소설이 되었다고 해.


 내가 그녀였으면 책이 성공한 것은 기뻤겠지만, 영화를 보고서는 어땠을까 싶네.


:그러니, 다음부터는 책을 읽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 괜히 영화 찾아봤다가 시간 버리고, 실망만 하지 말고.


:하지만, 피츠제럴드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좀 예외잖아.


:하긴, 그렇지. 그건 다음에.

매거진의 이전글 글의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