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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19. 2023

로맨스는 강하다

영화적 상상력에 박수를_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_출처 다음 영화

점선면(이하 점): 2009년 개봉된 영화였네!

이李씨(이하 이): 흠, 원작 소설은 무려 1922년에 쓰여졌다는 사실.

나는 작년 그러니까 2022년에 영화를 봤네.  딸이 같이보자고 졸라서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에  빨려 들어갔지.


: 까칠한 이씨가 박수를 치고 싶다고도 하고, 빨려 들어갔다고도 하는 걸 보니, 정말 잘 만들어진 well-made 영화인 것 같네.


: 사실, 원작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잘 몰랐지. 스콧 피츠제랄드 F.Scott Fitzgerald 원작 소설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찾아 읽어봤거든. 그제야, 와~! 하고 뒤늦게 감탄하게 되었어.


영화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 원작소설의 아름다움이 있다면, 이건 반대로 원작의 스토리에 살과 뼈를 붙여서 그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재탄생시켰다고나 할까. 원작은 몇페이지짜리 단편 소설 정도거든.


: 흠, 이씨가 말하는 살과 뼈 중에 하나가 로맨스인 거구만.


: 정확히! 이게 영화를 관통하는 핵심인데, 원작에서 벤자민 버튼의 연애사는 그 인생의 일부에서만 그려지거든.


영화에서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연인의 로맨스 스토리가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져. 그러기에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두 주인공의 투샷 영상! 미모가 영상의 완성이랄까.


배경영상의 아름다움까지, 영화이기에 가능한 영상미를 왕창 집어넣었다는 말이지.


: 원작소설의 느낌은 어때?

: 영화보다 등장인물도 적고, 시간의 흐름은 단선적으로 흘러가고, 로맨스의 분량도 극히 일부야.


벤자민 버튼이 노인의 몸으로 세상으로 온다는 것, 점점 젊어져서 나중에는 아기가 된다는 설정만 동일하지.


영화에서는 벤자민 버튼의 딸이 존재하지만, 원작에서는 아들이 나오고, 벤자민의 마지막 기억은 아들의 집에 있는 요람에 누워있는 것으로 끝이나.


소설은, 

로맨스보다는 나이와 외모의 부조화때문에 벤자민이 겪는 좌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과연, 다른 이들과 다른 시간의 흐름으로 성장(쇠퇴)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가? 하는 질문말이지.


: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있어?


: 세 가지를 말하고 싶은데. 전부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거야.


첫째는 벤자민이 대학교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데, 나이 들어 보이는 외모 때문에 거절당해. 조금 더 젊어지고 나서는 입학이 가능했지만, 급속도로 어려지는 외모 때문에 어려움을 겪게 되지.


둘째는 군입대. 전성기에 전쟁에 참여해서 공로도 세우게 되는데, 다시 또 참전을 신청하게 된 시점에서는 너무 어려져서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는 거야.


셋째는 결혼생활. 중후한 매력을 좋아하는 젊은 여성을만나서 주위의  구설수에도 아랑곳없이 결혼을 하고 얼마간 잘 살아가는 것 같았지만, 나날이 늙어가는 아내를 외롭게 두고, 벤자민은 점점 젊어지는 육체로 매력을 뽐내며 사교계에서 시간을 보내지. 그러면서  아내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이게 소설에서 보여주는 시간을 거꾸로 사는 이인 벤자민의 어려움이었어.


: 영화에서는 이런 이야기 대신 다른 것들로 채워진 거구나.


: 그렇지. 원작에 없던 설정들,


우선 강력한 로맨스.


벤자민과 데이지가 어려서부터 만남을 이어가다가, 청년기가 되어서 서로 사랑에 빠진다는 것. 그래서 두 사람 함께 청춘의 한때를 마음껏 사랑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


아버지와의 화해.

영화에서 벤자민의 흉측한 외모 때문에 그를 버렸던 아버지가, 마침내 벤자민을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벤자민도 아빠를 용서하는 장면. 벤치에 앉은 두 남자의 나란한 어깨가 생각나네.


그리고, 아빠가 된 벤자민이 데이지와 딸을 생각하면서 아빠로서 고심하고 결정을 내리는 과정. 모든 것이 아름다우며 슬프기도 했지.


벤자민이 어려지고 어려지고, 심지어는 마지막으로 가면서 데이지의 존재마저 잊어버리게 되었을 때도 데이지가 벤자민의 곁을 지켜주는 장면. 아, 벤자민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진다는 설정이기에 가능한 장면이잖아.


: 같이 늙어가는 처지의 부부도 그런 관계는 가능한 거 아냐? 시간이 지나 자식들도 다 떠나면 어쩌겠어. 둘만 남을 텐데.


: 그렇지. 어떻게 보면 작가가 의도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은유일 수도 있겠네.


나이 들어 손 꼭 잡고 가는 노부부인데, 알고 보면, 어느 한쪽은 기억을 잃어 어린아이가 되었을 수도.


: 흐.... 슬프다. 사랑하는 존재를 잊게 된다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대상이 나의 존재를 잊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는 것도.


: 그래서, 영화 말미에 눈물이 고이더라고.


나에게 다가올 시간, 나는 어떻게 늙어가게 될까, 그래도 내 곁에 사랑하는 이들을 잊고 싶지는 않다 생각하면서.


: 알았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걸 원치는 않을 거야. 하지만, 탄생과 죽음이 당사자가 선택할 수는 없는 거잖아.


있는 동안 더 많이 사랑하며 행복한 기억을 쌓으면, 기억 속에서는 잊힌다 해도 무의식 어디엔가는 그게 남지 않을까?


지금 여기, 이곳, 내가 보는 소중한 사람들과 잘 살아야지.


: 점씨의 말 고맙네.


그러니  감사를 표해볼까?


50여 년 나와 같은 자아였고, 브런치스토리에서는 나의 친구이자 나의 분신이 되어준 너란 존재.

고마워.

앞으로도 잘 지내자.


: 훗, 그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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