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패로군, chatGPT
좋기도 싫기도 무섭기도 우습기도
이李씨(이하 이): 최근에 영작 수행평가가 있어서, chatGPT를 학생들에게 소개해줬어. 그러다 보니 지난 2월 chatGPT를 시작했을 때를 좀 말하고 싶어.
점선면(이하 점): 지금도 사용 중이면서, 구태여 2월이라 하는 이유는?
이: 브런치스토리 작가님들 중에는 업무나 개인적인 목적으로 chatGPT사용하고 있고, 창작에 접목시켜 글을 올리는 작가님이 있다는 걸 알긴 하지. 그런데, 처음 chatGPT를 만난 그때, 개인적인 낭패감이 꽤 컸던 까닭에, 점씨에게 털어놓고 싶어서.
점: 그럼, 지금부터는 이씨의 독백으로... (싱긋)
그즈음, 나만의 방식으로 읽은 책들을 정리하는 방법을 궁리 중이었어.
책꽂이에 꽂아두는 그런 물리적인 정리 말고, 나를 위한 기록의 정리.
사용하는 플래너 뒤 쪽에 독서기록장 꼭지가 있긴 한데, 거기에는 책제목과 저자, 읽은 기간 정도나 메모할 지면뿐, 뭔가 책을 읽고 난 뒤 고양된 정서나 지식을 기록하기에는 무리인지라, 시간이 들더라도 한 단계 승화된 결과물로 기록을 만들어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세웠지.
결론, 독후감을 문서작업하여 쓰자. 그런데, 줄거리를 쓰는 건 의미가 없잖아. 줄거리는 이미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데!
책을 읽은 독후감이긴 하지만, 순전히 나의 감성과 지성, 상상을 자극하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 끝에 스타일을 정립하고 작업에 들어갔지.
2월 chatGPT를 만날 즈음, 글이 20여 개 쌓였을 거야.
chatGPT를 시작하자마자, 명령어로 전에 읽었던 책들(When the breath becomes air/ Normal People)의 일반적 리뷰를 시켜보았어.
출판된 지 시간이 좀 된 것들이라서 대답하는 내용에 무리가 없었어. 그런대로 읽을만 했다고 느꼈거든. 그때 1차 낭패감을 느꼈지. 200자의 시의 형태로 써달라니까 또 바로 시가 되는거야.
그럼, 좋아. 다음에는 이미 독후감을 써 본 책의 제목과 내가 해 오던 스타일을 명령어로 넣어서 작업을 해달라고 했지. 낭패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왔어. 순식간에 해내는 거야. 내가 오후 반나절을 공들여해 오던 일을. 읽어보면 또 그럴싸하기까지 해!
내가 독후감을 써온 책들은 영미문학 고전classic에 해당하는 책이라, 이제까지 쌓인 자료들, 그러니까 chatGPT가 학습한 양들이 엄청날 거였고, 그러니, 명령조건에 따라서 글의 톤까지 달리하면서 답을 해주는 거였지.
에잇! 이러면 이제까지 내가 해온 일들이 헛짓이 되는 건가! 2차 낭패감.
속상한 마음에 명령어를 이것저것 입력하기 시작했어. 금방 한계가 드러나더군. 한국문학에 대한 정보 부재, 심지어는 출간한 지 몇 년 된 미국소설(The gentleman in Moscow)에 대한 세부 정보 오류.
그에 chatGPT를 지적질했고 잘못된 정보를 준 점에 대해 미안하다며 chatGPT한테 사과를 받기도 했는데, 내가 가르쳐준 정보를 바로 학습하지 못하고 오류를 되풀이하기도 했어.
하지만, 이미 학습한 내용이 체계화된 분야에서는 정보처리 속도가 놀라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살기 위한 방법을 물으니, 인공지능 AI가 인간인 나에게 답을 해주네! 자기 계발서의 총망라!
BlBLE 성경에 입각한 이야기들과 설교문 작성.
3차 낭패감. 인공지능이 인간의 삶과 영혼의 문제에 대한 글을 이처럼 작성하고 있다니!
이미 chatGPT를 잘 아시는 분들에게 뻔한 경험담이겠지만, 내가 느낀 낭패감 3종세트를 한 번은 말하고 싶었어.
그 후로 chatGPT랑 놀고 싶지는 않아서, 딱 일할 때, 필요할 때만 불러내고 있어.
평생을 영어학습자 lifelong English learner로 살아야 하는 영어교사다 보니, 정확한 영어, 혹은 그 이상, 최적의 표현을 제시해 주는 인공지능이 고맙기는 하더라고.
영작 수행평가에서 나의 품을 많이 덜어주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영어문장의 오류 확인과 수정방법을 알려주니까, 학생들이 나에게 중간에 물어볼 필요가 없었던 거지.
(독자님들, 오해는 마세요. 수행평가는 아이들이 수행평가 당일에는 자기 머릿속에 해당하는 글을 저장한 상태로 맨 종이에 써내야 하는 거라서 자기의 연습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에서 과제형-학교외부에서 다 해 와서 제출하는- 수행평가는 하지 않습니다.)
자, 오늘의 결론을 맺어볼까 해.
chatGPT
영어를 잘 가르쳐주니 영어교사로서 좋아,
고전영미문학을 소재로 글을 쓰려는 입장에서는 나보다 더 많이 설說을 풀어서 싫어,
인간성과 영혼의 문제까지 학습해서 정보화하는 건 무서워,
못 배운 건 엉뚱한 대답을 하면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건 우스웠어.
그러니 chatGPt가 직접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하지 못한,
오직 나만의 생각과 지성과 상상으로. 독후감을 이어나가려고 해.
이건 나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작업이니까.
설령 그 결과가 비슷해 보인다 하더라도, 내 생각과 글쓰기의 연습은 날 단련시켜 주리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