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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02. 2023

선생님은 교직에 어울리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선면(이하 점): 오늘의 제목을 보니, 회상 설說인가요?

이李씨(이하 이):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하고 나서 늘 마음 한 구석에 있던 장면이기도 하고, 지난번에 '상장'에서 쓴 것만 보고, 독자들이 행여 나를 '타고난 교사'라고 오해하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https://brunch.co.kr/@a49220c896344b2/75


: 아효~. 걱정도 참. 조회수가 얼마나 되었다고.

: 그 글이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풀어놓을 얘기였어. 작가의 서랍에 담기지만 않았을 뿐이지, 머릿속에는 학교라는 일터를 주제로 한 글들이 이미 고이고 있어서.


: 그럼, 아예, 학교생활을 주제로 매거진을 하나 따로 만들지 않고?

: 그렇게 되면, 매거진 주제의 일관성에 맞춰서 글감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는데, 그게 싫어서. 이 매거진 첫 회에 얘기했던 대로.

https://brunch.co.kr/@a49220c896344b2/74

: 이씨야, 이건 자기 복제도 아니고! 조금 진지해져 봐.

: 흠.....지금 진지한 상태야.


: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보시게. 육하원칙에 의거 가능하신가?

: 때는 2004년, 계절은 아마 봄. 장소는 인천소재 모 남자공업고등학교. 별관 3층쯤, 한 교무실. 나를 마주한 인물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의 여교사이며 기억하기로는 수학교과였고, 상담 쪽으로 전문적인 훈련을 해서 담당업무가 상담이라...... 그래! 그곳은 상담실이었어.


나는 2002년 3월 신규발령 후 2002년 10월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 그리고 2004년 3월 복직하고 몇 달 지난 시점이었지. 2002년에는 임신 중이라 담임을 맡지 않았으니, 그 해가 내가 처음 담임을 맡은 해였지.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어. 그 선생님은 크고 똥그란 눈을 더 똥그랗게 뜨고 조금도 주저하는 눈빛 없이, 제목의 말을 했지.


'선생님은 교직에 어울리지 않아요.'


: 뭐어야. 그 선생님 업무가 상담이라며!

: 그 점이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야.


: 그 목소리를 어떻게 이겨냈어?

: 흠... 일단은 내가 권위자들에게 그리 순종적이지 않는 성향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했지. 그의 말을 마치 나에 교직능력에 대한 심판이라고까지는 무게를 두지 않았어.


: 그래도, 전혀 영향이 없었을까?

: 전혀 없진 않았지.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의 반발심 때문에 말의 영향력으로부터 나를 조금은 방어를 했어. 이른바 상담 선생님인데 이런 말을 하는 당신이라면, 당신의 말을 존중하고 싶지는 않네요.라는 식의 반발.


: 네 성격도 참.

: 하지만, 성찰을 하긴 했지. 그가 나에게 그런 판정을 내리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싶었고, 그의 말처럼 나는 교사생활에서 죽을 쑤는 기분이기도 했으니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기분? 임용고사 합격전에 학교경험이라고는 시험보기 전 여름, 방과후학교 강사 2주가 전부였고, 신규발령받는 해는 임신했다고 비담임이었거든.


그곳에 갔던 건, 첫 담임교사로 버벅대는 고달픔에서 조금의 위로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아, 누구에게 기대 보려 하는 것이 어리석은 건데, 그렇게 해보려 한 나 자신이 모자라 보여서는 맘이 상하고 돌아왔어.


: 그런 얘기까지 들었는데, 이제까지 꽤 오래 버티었네?

: 교원의 성장단계라는 가설?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는데. 교직 초반 5년을 생존기로 보거든. 그 생존기술을 연마해야 하는  5년 사이에 나는 두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으로 학교를 떠나 있었으니!


그런데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게 나의 생존을 도운 신의 한수 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어쨌거나 당시엔 동료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는데, 신규나 다름 없는 내 처지에 정말 기운이 빠지더라고. 게다가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켜 가면서 워킹맘으로 살아야 했고.


: 고단한 시절을 보냈구먼.

: 학교는 또 얼마나 먼지. 아침 7시에 집을 나서서 7시 15분에 어린이집에 아들을 두고 길을 나섰지. 덕분에 아들을 임신한 채로 딴 운전면허로 지금까지 차 잘 몰고 다니고 있으니,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고.


: 그래, 그 후로 2004년 첫 담임은 잘 흘러갔나?

: 흠. 지금생각해 보면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만큼, 제대로 못한 게 많지. 6월에는 둘째 임신한 걸 알게 되어서, 입덧 추스리면서 꾸역꾸역 일했지.


다행히 방학을 지나면서 입덧이 줄어들어서 2학기는 그런대로 흘러갔지만, 첫 담임으로서의 기억은 힘들었어. 남자공업고등학교.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서 쉴 새 없이 들리는 욕설. 무례한 언행들. 배우는것에 대해서 저항하는것 같은 수업태도. 권위의 폭압적 태도가 학생을 제압하는 능력이라 여겨지는 상황들. 내 학창시절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사고들에, 태교는 바랄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 지치더라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데려와서 집에 오면 집안일, 육아. 흑... 지금 생각하니, 참 짠 허다.


아. 이런 옛 하소연 하자고 한 게 아닌데.


: 그래, 이 씨가 생존기에 고된 일들이 많았겠다.


: 응. 그랬지. 혼자 방에서 소리치며 우는 날도 있었고. 웅크리고 기도하며 우는 날도 있었지. 남편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울먹이며 말할 때도 있었고. 차를 몰고 가다가 어디다 쾅 차를 받쳐버리고 싶은 날도.


: 어떻게 그 시간들을 지났어?

: 은혜.

: 은혜......

: 임용시험을 보기 전 기도했지. 그리고 합격이 되었어. 아무리 진창 같은 시간들이었어도, 그래도 눈물을 닦고, 다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나를 이곳으로 보내주신 데는 그분의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 믿음을 붙들고 싶었어.


그리고,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었어.  


'넘어진 곳에서 일어나라.'


내가 여기서 넘어져 괴로워도, 이곳에서 다시 일어나는 경험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어. 내가 교직을 중간에 그만둔다면 나는 내 남은 인생동안 실패감과 회피의 기억으로 학교현장을 기억하게 될 거라는 게 보였거든.


나의 아이들이 언젠가 자라서 학교에 들어가고, 내가 학부모가 될 텐데, 학교에 대한 나의 성공경험이 없으면, 아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이 그 실패감과 부정의 감정이 전달될 수밖에 없을 거라 보였거든.


'그만두더라도, 이곳에서 성공의 경험을 한 후에 결정한 일이다.'라고 생각했어.


: 지금 이 씨의 말을 들으니, 이 씨는 넘어진 곳에서 일어난 것 같구나.

: 음. 일어나기까지 내가 많이 깨어지고 다듬어졌지. 물론 지금도 완성형이 아니라 과정 중에 있지만, 지난날의 나의 모습보다는 많이 성숙해졌다는 이 느낌이 참 좋아.


: 그래, 하나님이 널 학교로 보내신 이유를 알겠어?

: 음.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학교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성장한 것들이 정말 많아. 언젠가 이 매거진에서 말하겠지만 사회적 기술이 취약한 나의 기질에는 학교만큼 사람들 속에서 사회화되기에 최적인 곳이 없었던 거 같아.


그리고, 누군가는 학교를 폐쇄적이며, 권위적이고 자유가 없는 막힌 공간으로 느끼지만, 사실, 담임이나 업무의 특징에 따라서는 자기 책임에 대한 자율권과 독립성이 주어지는 곳이기도 해. 자기의 소신을 펼칠 여지를 보장받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지.


학급경영은 담임의 기획이나 실천력이 필요한 장소이자 공간이고, 업무에 따라서는 담당자의 창의적인 접근을 요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어떤 선택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지.


: 정말 앞으로 꽃길만 걸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태세네?

: 아니. 어쩔 수 없는 외부요인이 길의 형태를 결정짓는 큰 변수야. 학생. 학부모. 관리자. 동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결정요인이라. 그래서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는 게 중요하지.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안에서 최선의, 행복과 보람을 위한 선택지를 선택하겠다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지.


진창을 지나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진창 가까이 혹은 너머에 피어난 고운 꽃들을 놓치고 싶지 않고, 그 조차 없다면, 고개를 들어서 하늘이라도 보겠지.

 

진창에, 비가 오고, 주위사방은 온통 죽어가는 흙빛이라면 어쩌겠어?


말씀이 있잖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한 발을 내 딛는 것이고, 내 영혼은 푸른 풀밭을 꿈꾸는 거지.


: 흠. 이 씨에게는 믿음이 있구나.

: 그래, 언젠가 이 믿음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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