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다사나_태아자세
세상을 향해 힘을 뻗을 준비를 한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합격소식을 안겨 준 첨부 글 중 하나, 공개합니다.
핀다사나, 내가 할 줄 아는 요가의 모든 아사나(자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세.
누운 채로 다리를 머리 위로 보내어 바닥에 발가락을 내려놓는다.
두 다리를 머리가까이로 끌어당겨, 무릎을 양 귀에 모아 붙였다가, 뒷목과 어깨의 힘으로 다리를 공중으로 보내어 그 상태에서 결가부좌를 한다.
그다음 결과부좌한 두 다리를 얼굴가까이로 최대한 끌어당겨 모으고 양팔로 감싸 안는다.
그러면 내 사지 간의 공간이 최소로 줄어들고, 몸은 둥글게 말아지는 져, 엄마 뱃속에 웅크린 아기 같은 모양새가 된다. 태아자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겠다.
그렇게 자세를 잡고 몸의 움직임은 멈춰진 상태에서 오로지 호흡에만 집중하는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다.
호흡과 함께 내 모든 에너지를 꽁꽁꽁꽁 묶어 싸매어 응축키는 시간의 끝.
드디어, 몸을 풀어 다리를 결가부좌한 상태로 바닥에 내려놓으며 후~ 호흡을 터트리며 몸에 쌓였던 에너지를 발산시킨다.
최대치 긴장과 이완 사이 찰나의 순간이 주는 자유로운 해방감이 내가 태아자세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이다.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어느 날 내 자궁 안에 또 다른 생명체의 움직임을 난생처음 느꼈다. 위장이 꾸르륵 대는 느낌과는 분명히 다른, 어떤 움직임.
낯설고도 경이로웠던 그 느낌. '와, 이런 걸 태동이라 부르는구나! '
초음파 사진 속에서 내 자궁 속 한 덩이 물질로 보였던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감격!
조금 더 지나서는 꾸물럭 꾸물럭 대면서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여대는지 뱃속에 담겨 보이지도 않는데도, 신이 난 아가의 둠칫거림에 덩달아 신이 났다.
더 시간이 지나자 아기는 크고 묵직한 덩어리가 되어 천천히 움직였다. 출산 예정일을 몇 주 앞두고서는 어쩔 때는 손인 듯 싶기도 하고 발인 듯 싶기도 한 작은 덩어리가 불쑥 내 뱃가죽을 밀어냈다.
이제 아기는 자궁이 비좁아서 ‘신나게’ 놀 수 없고 대신 팔다리를 웅크리고 있다가 느리게 내 배속을 휘돌아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게 진통인가 싶은 첫 느낌이 시작되고 여덟 시간 만에 아들이 태어났다.
골반의 뼈들이 아기가 나오는 길이 될 만큼 벌어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지라,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였으나,
간호사님이 안고 보여주는 아기를 보며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들의 머리통은 옥수수 모양으로 정수리가 뾰족했다.
걱정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아기 머리가...'라고 말하는 나에게, 간호사님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거 금방 괜찮아져요.'
내가 진통을 겪는 사이, 아들도 좁은 산도를 빠져나오느라 나름 용을 썼다는 걸 머리통 모양을 보고 알았다.
아가, 너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던 거구나!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왔다. 하지만 엄마에게서 이 세상으로 나오던 때의 기억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진정 있기라도 하는 걸까?
사라지지 않고 깊고 깊은 무의식의 세계 속에 숨어있으면서 어떤 메시지를 지금도 보내는 건가? 아니면 영원한 망각의 세계로 건너가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이 된 건가?
태아자세를 할 때 어머니의 자궁이 느껴진다고는 말 못 하겠다. 자궁 안에 담겼던 기억은 이미 없으니까. 탄생 이후 나를 안온하게 감싸주며 외부세계로부터 나를 지켜준 물리적인 공간은 경험을 하지 못했으니까. 이미 세상에 이렇게 존재해 살아가고 있어서.
대신, 뻗어나간 사지를 거둬들여서 나를 자그마한 물질로 만들고 마침내 해방, 탄생, 자유, 탈출의 시간이 되어서 내 육신을 공간에 내어 뻗을 때, 나 스스로의 힘을 느끼게 된다.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기들이 세상에 나올 때 그렇지 않았을까?
어른들이 보기에는 미약한 신생아에 불과하겠지만, 나름의 의지와 생명력으로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라는 자연의 움직임에 반응한 것이 아니겠나 싶다.
이제껏 자궁 안에 머물며 쌓아두었던 힘을 다해, 세상을 향해 몸을 뻗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