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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20. 2023

나에게서 너에게로

흩어지던 말들이 가 닿았다

이李 씨(이하 이): 중학교 3학년 어느 한때 내가 말을 안 하고 사는 걸 생각했어.


점선면(이하 점): 흣, 사춘기의 반항이었던 건가?

: 반항은 아니었고, 그냥 말(언어)에 대한 의심 때문에.


: 말에 의심을 품다니, 어쩌다가?

: 말이라는 게 생각해 보면 참 이상야릇하단 말이야.


공기 중에 흩어져버려서 흔적도 남는 게 아닌 데다가, 내가 말한 그 말이 듣는 이에게 어떻게 제대로 전달이 되는지, 과연 내가 생각하는 것이 온전히 말에 제대로 담기기나 한 건지.


사람들은 허탄하게 실속 없는 말들을 지어내고, 듣는 이는 듣는 이대로 수용이라기보다는 자기만의 곡해로 흘러가기도 하고.


드라마를 봐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뭐라 해도 부모님이 나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였는지, 하여간, 그때 말 안 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고 느꼈던 거 같아.


: 실행에도 옮겨봤나?

: 아니, 그렇지는 못했고, 어디서 천주교도들이 묵언수행을 한다는 얘길 들었고, 수녀님이 되어 나도 묵언의 생활을 해 봐야겠다 생각하다가 끝났어.

 

: 에구, 그런 네가 지금 교사를 하고 있으니, 초창기에 힘들었던 이유가 있겠다.

: 그래, 그런 이유도 있었던 같아.


말로 하는 일들 중에서 나쁜 의미의 명령, 지배, 지시, 경고, 조롱, 협박, 강요, 비난, 판단, 꼬리표달기, 심문하기 이런 것들에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내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런 류의 말들이 넘쳐흐르는 일터에서 지내다 보니, 정말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고통스러웠어.


학생들이 사용하는  말도 못지않게 거칠기도했고.


오래전 일이네.


: 이제는 네가 반감을 가지는 언어사용과는 다른 언어스킬을 사용하고 있나?


: 외국어를 배우는 자세로, 의사소통 방법을 공부했지. 이름 있는 강의 쫓아다니고, 좋다는 책을 찾아보면서.


어느 한 분야의 정통성을 가진 전문가는 못되었지만, 그래도 큰 도움을 받았어.


: 그래, 이 씨가 서두에 말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을 텐데?


: 내가 청소년기 어느 때쯤 말을 거두는 걸 상상했었다면, 오늘 소개할 친구는 자기 속에 가득한 말을 세상으로 보내고 싶어 해서.  


그의 이름은 멜로디 Melody.


: 세상으로 말을 보내지 못하는 이유가?


: 뇌성마비거든. 사람들은 Melody의 겉모습만 보고서 쉽게 Melody의 지적능력까지 판단해 버리는데, 그녀는 한번 본거, 한 번 들은 건 다 기억하는 천재야.


단어의 천재이기도 하지. 그러니,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 속에서 오해받는 게 얼마나 더 괴로웠겠어.


그래서인가 영문판 제목이 'OUT OF MY MIND'(정신이 나간)야.


 우리말 번역본은 두 가지 제목.

 '나의 마음을 들어줘(개암나무)',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뜨인돌)'


: 가족들은 어땠어? 가족들은 Melody의 천재성을 알아본 거야?


: 다행히. 어떤 소설에서는 가족들이 가장 큰 가해자이기도 한데, 이 이야기 속에서는 부모님이 Melody를 지켜주고 지지해 주지.


아, 또 한 명 이웃에 사는 바이올렛 아줌마, 줄여서 V라고 부르는 이웃도 Melody을 아껴주고.


: 학교에서는 어때? 학교를 다니긴 한 거야?


: 지내기도 어려운 점도 있지만 Melody는 등교해. 아쉬운 건 특수교육반에서 그녀의 지적 능력에는 한참 못 미치는 내용만 반복한다는 것이지. 그러다가 5학년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돼.


통합교육 inclusion-program이 시작되면서 일반학급 수업에 참여하기 시작해.


: 그래도, Melody가 말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하니, 여전히 친구나 선생님들에게는 그녀의 천재성이 드러나지 못하겠네.


: 하지만, 이건 성장소설이잖아. 어떻게 주인공을 그런 처참한 절망 속에 두겠어. Meolody가 드디어 음성언어를 사용해서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게 가능해지지.


: 와~. 소설이라서 가능한 건가, 아니면 정말 있는 일인가?

: ChatGPT한테 물어보니 현실세계에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AC) 기기라고 의사소통을 돕기 위한 기계들이 존재하기는 하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Medi-talk도 비슷한 목표를 수행하기는 하지만, 허구의 기기였어.


: 그러니까, Melody가 언어사용을 돕는 기계를 사용하면서 드디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게 되는 거구나. 자연스럽게 그녀의 천재성도 드러나겠네.


: 그렇지. 겉모습만 보고서 그녀를 폄하했던 이들이, 처음에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결정적으로는 전국단위 퀴즈대회 출전권을 따기 위한 학교대표 선발과,  대표 팀 선발 대회를 준비하면서 Melody의 지성이 빛을 발하지.


: 그럼, 이제는 퀴즈대회를 준비하는 스토리라인이겠네. 물론 Melody가 활약해서 접전을 펼치면서도 끝내는 전국단위 퀴즈대회도 나가고, Melody가 미국 전역에 대스타가 되면, 정말 멋지겠다.


: 작가님은 점 씨의 상상력보다 한 수 위야.


: 이그? 그럼 뭐지?

: 그 후의 과정은 비공개. 성장을 하는 데는 성취도, 좌절도 자양분이 된다는 것 정도만 말할게. 아, 모든 성취와 좌절이 다 자양분인 건 아니다.


그것을 성찰하는 능력, 회복탄력성, 의지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야겠지. 좌절을 거듭한다고 성장하는 건 아니니.


: 이 씨의 불친절한 끝맺음에 삐지지는 않을게. 대신 본인의 말(言)에 대한 소회로 열었으니, 끝맺음도 부탁.


: 개인적인 반성을 했어.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기에 나는 나의 말을 통제하려고 했구나. 정말로 간절하게 소리 언어의 세계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수많은 소리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는데, 가능한 기능으로 부여받은 발화(發話)를 소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래서 공해와 오염의 소리가 아니라, 혐오와 미움의 소리가 아니라, 이 대기 중에 아름다운 소리 언어가 흐를 수 있기를.


: 우~ 좋아~맞아 맞아.

OUT OF MY MIND(ATHENEUM BOOKS)/ 안녕, 내 뻐끔거리는 단어들(뜨인돌)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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