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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Jun 26. 2023

나무에서 내려와

헤엄 치렴, 지느러미를 펼치고

점선면(이하 점): 이런, 나무에 올라간 물고기라?

이李씨(이하 이): 대개는 나무 위에 얹힌 물고기를 딱히 여기고 물에 풀어놓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 거야.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산다는 걸 아니까.


: 보는 사람이 딱하게 여기기 전에, 물고기가 당하는 고통은 어떡하나? 퍼덕거리다가 죽게 될 것 같은데.


: 점씨가 그렇게 얘기하니, 아래 유명한 일러스트를 소환해야겠네.

(그림 안) 탁자에 앉은 이가 하는 말 : 공정한 선발을 위해서는 모두가 같은 시험을 쳐야 해: 저 나무를 올라가도록!
(그림 아래) 아인쉬타인의 말: 우리의 교육체계 "모두가 천재이다. 하지만 당신이 물고기를 나무를 오르는 능력으로 판단한다면, 물고기는 평생에 걸쳐 자신을 바보라고 여기면 살아갈 것이다. "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도 학교에서 마치 나무 타기를 해야 하는 물고기처럼 살아야 했던 소녀야. 이름은 앨리 Ally.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글을 읽지 못하는데, 그걸 드러내서 말할 수가 없었지. 어떻게든 그 사실을 숨기려고 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선생님들의 지시와 요구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을 할 수밖에 없어서 교장실 단골손님이 되었어. 소문난 문제아로 낙인 찍히지.


: 선생님들이 앨리를 이해하려고 자세히 관찰하거나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던 모양이네.


: 그런 셈이지. 드러나는 모습과 행동 이면에 어떤 동기가 있는지까지는 호기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거야.


이를테면, 학교에서 잠만 자는 학생인데, 그의 수면부족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까지는 생각하지 않고, 잠만 자는 불성실한 학생으로 꼬리표 붙이기 식인 것.


앨리도 스스로 그렇게 말해. 이를테면 자기는 캔 안에 담긴 수프인데, 사람들은 캔 포장에 적힌 내용물이름만 보고서 자신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군다고.


: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앨리는 꽤나 영특한 소녀인 모양이네.


: 창의적이고 독립적이고, 개성 있는 발상을 하는 친구다 보니, 그것 때문에 오히려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하지.


공부 좀 하는 친구의 실없는 말은 친구들이 환호하는 '드립'이 되는데, 어째 좀 부족하다 싶은 꼬리표가 달린 친구들의 실없는 말은  'X소리'로 평가받는 걸 보기도 했어.


아이들끼리 서로 그러고 있는 거야.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공부의 서열로 말의 영향력을 인정해 주는 거. 씁쓸해.


소설 속에서도 앨리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깎아내리는 셰이라는 아이가 나오거든. 아이들의 편견과 어른(선생님들, 부모님들)의 편견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어른들에게 성적으로 호되게 시달림을 받는  아이가 자신에게 가혹한 잣대가 왔던 것처럼, 타인 그러니까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는 경향이 있단 말이지. 일부 아이들에 그런 모습이 보여.


자신보다 잘하는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만큼 못하는 친구들에게는 우월감을 드러내려는 뒤틀린 자아, 자존심.  그런 아이들의 내면세계에서 소리치고 있는 어른들의 평가, 비난, 질책들이 무섭고, 안타까워.


그런 성적우열주의 가치관으로 십여 년, 치열한 경쟁으로 학생, 취업준비기를 지나온 들이  사회에 진입해서 다시 또 성적우열주의 프레임이 더 강화되고, 다시 또 자녀들을 그렇게 다그치고, 그것이 순환된다고 생각해 봐. 많이 걱정스럽지.


그래서 아이들 앞에 서는 선생님들이 모든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이 무의식적인 모델링이 될 수 있을 텐데, 선생님들 모두가 그런 좋은 자세를 갖추었다고는... (슬프게도) 말 못 하겠어.


아이들을 조롱하는 말을 하면서도, 본인이 꽤나 위트가 있고 재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어.


지금은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00은 상처받겠는데요.'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맞서주지 못한 것이 무척 미안하고 아쉬워.


: 앨리가 만난 선생님들은 어때?

: 앨리가 일곱 번인가 전학을 하면서, 나아지는 것은 없이 상처만 커가고 있었는데, 이건 아동청소년 소설이잖아. 새로운 계기가 다가오지.


담임이던 선생님이 출산휴가를 가면서 새로운 선생님 Daniels 대니얼스가 오는데, 이분은 앨리에게 따뜻하게 다가가고, 앨리의 문제점이 문제점이 무엇인지 관찰하려고 해.


: 아, 드디어 앨리에게 빛이 비치는구나.

: 때마침, 앨리에게 좋은 친구들도 생기지. 좋은 선생님과 좋은 친구.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기분으로 외로웠던 앨리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야.


자신을 형편없는 존재로 비참하게 여기던 앨리에게 잘하는 것이 있다고 격려해 주는 사람들이고.


세상에 화려한 명성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는 것보다, 가까이에서 진실로 아껴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지. 앨리를 힘 있게 일어서도록 했으니까.


: 앨리가 어떤 문제 때문에 그렇게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또 비밀인가?


: 아까 내가 이미 말했어. 책을 읽지 못하는 어려움, 난독증이었지. 그의 오빠도 맥락상, 같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은데, 앨리가 먼저 눈치를 채는 것 같아.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 부분에 인상적인 문구가 등장해.


때로 가장 용감한 일은 도움을 청하는 일이다. -C. 코너스


: 교실 수업이나 학교생활에서 학생들에게 해 주면 좋을 말이네.


: 그렇지.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도움을 청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도록 배워온 것 같아.


수업을 하면서 시간을 두고 과제를 할 때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부르라 해도, 그걸 어렵게 생각하고 잘 안 하는 게 보였어.


선생님에게 물었을 때, 부정적인 반응 '아까 설명한 건데 몰라?', ' 이것도 몰라?'식의 말을 들으면 위축되어서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아이들이 원한 건 그런 평가나 비난이 아니니까.


도움을 요청해도, 물어봐도, 자신이 질책당하지 않을 것이고, 격려받을 것이며, 친절한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전까지는 그런 용기를 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해.


그런 부정의 인식을 깨고 스스로 용기를 내게 기다려주는 시간도 필요해.


그러니, 학생이 질문을 하더라도 수용되는 분위기, 인정받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교사의 몫이고, 어떤 질문에도 존중의 태도를 잃지 않는 것이 정말 중요하지.


심지어는 다른 친구들이 만들어내는 부정의 피드백까지도 교사는 바로잡아 주어야 할 필요가 있어.


교사가 '언어의 연금술사'가 되어야 하는 이유야.


: 훗, 이 씨가 말하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겠어.


: 겸손하게 말할게. 완전한 경지에 올랐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지금도 부단히 자기 성찰과 반성의 순간을 만나지.


분명한 건


말의 태도 이전에 마음의 태도가 먼저이고, 마음의 태도 기본에는 내가 대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먼저 존중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델이 되겠다는 다짐이야.

 

아예, 수업 첫 시간에 얘기하지. 나의 다짐.


내가 교사라는 이유로, 어른이라는 이유로 너희들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

너희도 나를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 이 씨의 respect 선포가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면 좋겠군.


: 그렇지. 설령 내 수업에서 영어는 배우기 싫더라도, 잠재적인 가치 '존중'을 배우는 시간이 된다면 좋겠네. 가랑비에 옷 젖듯이. 흣.

FISH IN A TREE(PUFFIN BOOKS)/나무 위의 물고기(책과 콩나무)_출처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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