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
세상이 어두워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창문 가에 있는 소파에 앉아 창문 넘어로 세상을 본다.
창문 넘어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고. 사람과 함께 걷는 강아지를 구경하고. 때로는 어둠이 온 세상에 찾아오는 여우도 구경한다.
나는 그들을 창문을 통해 보게되면 짖는다. 나의 짖음은 나 여기있다 하며 큰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 틈 사이에서 나를 발견하지 못하는 걷는 강아지에게 보내는 짖음이기도 하다.
낯선 사람이 집으로 다가 오지 못하게 하는 짖음이기도 하다.
세상이 어두워 지고 난 후 함께 있던 주인 아저씨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며 두터운 외투를 입고 현관문 앞에서 나에게 마른 소고기 간식을 여러개로 뜯어 바닥에 던져 준다.
"쫑 잘 있어 일 갔다 올께" 하며 주인이 떠난 후 홀로 보내게 된다.
오줌이 급하더라도 주인 아저씨가 돌아 올 때까지 참아야 한다. 배가 고파도 참아야 한다. 따뜻한 침대위에 주인 아저씨와 함께 누어 있지 못하게 된다.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은 무척 바람이 강하게 불어 되는 어두운 밤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7살인데 목 놓고 눈물을 보이며 울 수도 없다. 홀로 지내는 밤은 길고 따분하다. 홀로 지내는 밤은 길고 서럽다. 홀로 지내는 밤은 길고 춥다.
현관 문 밖에서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쫑" 하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주인 아저씨의 목소리다.
하루 밤을 홀로 있었다는 것. 주인 아저씨를 내가 엄청나게 그리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나의 네발 걸음의 가벼움을 온 몸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나의 꼬리가 무엇이 그토록 즐거운지 하늘을 향해 요동친다.
"잘있었어"
주인 아저씨는 나의 얼굴을 쓰담아 주며 꼬리치는 나의 몸을 가볍게 만져 주며 "화장실?" 하며 고맙게도 밤새 참아 떠 질것 같은 방광의 고충을 챙겨 주었다.
그는 부엌 옆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힘껏 뒷 발길질을 하며 밖으로 뛰어 나가 정신없이 가득 찬 방광을 비어 내었다. 이토록 시원하고 개운함이 행복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을 알게되었다.
볼일을 보고 집안으로 들어 온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소고기 간식을 챙겨 주는 주인 아저씨가 지금 이 순간 정말 좋다.
"산책하자"
앵? 오늘 뭔일이여.
나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뜻밖에 산책을 하자고 주인 아저씨가 제안을 한다. 나는 싫어 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원하는 일 아닌가? 내가 사람이라면 복권을 구입해야 하는 날이다.
산책은 늘 즐겁다. 세상의 다양한 냄새를 맡는 다는 것은 마치 다양한 음식을 맛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넓은 운동장에 도착하자 목 줄을 풀어 주는 배려로 나는 온 세상이 나의 것 인양 신나게 즐겁게 온 몸을 흔들고 꼬리를 흔들고 풀에서 풍겨나는 냄새도 맡으며 뛰어 놀았다.
나와는 달리 주인 아저씨는 우두커니 한 자리를 고수 하며 뛰어 노는 나를 바라본다. 행여 내가 그의 시아에서 벗어 날려면 나의 이름을 불러 마치 넘지 말아야 할 범주를 지켜야 하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주인의 의도에 따라 범주 안에서 마음껏 뛰어 다니며 새를 쫓기도 한다.
목 덜미를 붙들고 찬물과 더운 물을 혼합하여 주인 아저씨는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경고를 하며 온 몸에 물을 뿌린 후 비누 칠을 한다. 이제는 나도 익숙하다. 익숙하기 보다 포기 상태이다. 목욕은 정말 싫지만 목욕을 거부 하면 나에게 어떠한 체벌과 잔소리를 늘어 놓을지 지난 몇년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무조건 참아야 한다.
목욕이 끝날 때까지.
목욕이 끝나면 뜨거운 바람을 견디며 털이 가벼워 질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털이 마르고 가벼워 지면 주인 아저씨는 나의 몸에 가분할 정도의 많은 양의 향수를 퍼 붙는다. 그러고 나면 나는 주인 아저씨로 부터 자유로움을 얻게된다.
왜 목욕을 해야하는 지?
나를 목욕시켜주지마 하고 데모라도 하면 나는 알고 있다. 주인 아저씨의 행동을.
"너 이제 부터 밖에서 살아. 집안에 들어오지마"
참는 강아지에게 복이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