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의 심장을 향해 세발의 총알을 쏘았다.
몇일 전에 구입한 김훈 작가 '하얼빈' 소설 책을 읽었다. 안중근과 이토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실존 등장 인물들을 하얼빈 소설에서 얻어 가는 즐거움은 소설의 매력이다.
작가는 안중근을 수 십년 동안 마음에 간직했던 소재이었다고 한다. 게으름 보다 두려움으로 안중근에게 접근 했다고 한다. 작품을 준비 하기 위해 수 차례 일본을 방문하고 수 많은 자료를 읽었다.
그런 자신의 소설을 출간 후 '부족한 부분들이 많다' 라며 겸허하게 상세한 묘사의 부족한 아쉬움을 독자들에게 알려 주었다.
일본이 한국 근대사를 많이 왜곡했다.
중국이 한국 고대사를 많이 왜곡했다.
한반도 주변 나라 일본과 중국으로 부터 오랜 시간 탄압과 고통의 시간을 우리는 모질게 혀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참고 견디어야 했다.
'하얼빈' 소설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인물 안중근의 이야기 이다.
안중근. 그의 이름 자체 만으로도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심장이 뛴다'
이런 표현을 서슴없이 내 뱉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소설 책은 한번도 들어 보거나 배우지 않았던 안중근과 그 시대 상황을 알려 주었던 귀중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사형 날을 기다리는 안중근에게 어머니 마리아의 편지는 너무나 유명하다.
"아들아. 나라를 위해 떳떳하게 죽으라"
소설책은 좌우 치우침 없이 그 시대를 드려다 볼수 있는 시간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왜곡된 역사관은 우물 안의 개구리 처럼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한계에 머물게 한다.
한계는 세계인들에게 혹은 세대 간의 '공감' 을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서로 다른 해석은 충돌을 유발 시키기도 한다.
'하얼빈' 소설은 한일 합방 후, 일제 시대를 배웠고 알고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 생각을 해 보게 자극한다.
노비제도 타파.
조선의 노비제도는 세종때 가장 잔혹 할 만큼 강화 되었고 조선 왕조 500년을 유지 해 왔던 노비 해방은 불행하게도 민비, 흥선대원군, 고종/순종을 통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일본에 의해 조선의 노비는 비롯소 해방을 얻었다.
신분제도 타파.
조선의 끝자락에서 신분 제도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던 돈 많은 상인/천민들은 돈을 지불 하고 관직에 등용되고 신분 세탁의 기회를 얻었다.
조선의 양반의 출세를 결정했던 과거시험 제도는 더 이상 새로운 신 일본인들(조선인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았다.
신 일본인들에게는 새로운 학문의 배움 기회가 주어졌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일본인들은 '공자왈.맹자왈' 궁시렁궁시렁 글을 읽었던 조선의 양반 교육 보다 신 학문 교육을 받은 인재들에게 더 좋고 낳은 사회 진출의 기회를 주었다.
'개천에서 용났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 되었다.
"야.야.. 머시기 옆집네 아들이 이번에 순사가 되었어라"
"김서방 아들놈은 법 공부 하여 뭐라꺼드라.. 검사가 된다고 하더라."
"저 아래 동네, 백정 아들놈은 선생이 되었다고 하더라."
한일합방은 지금까지 권력을 누려왔던 소수의 양반 세력에게 힘든 세상 이었지만 조선 백성들에게는 살기 좋았던 시절이 아닐수 없었을 것이다.
동학
동학농민운동은 억압 받았던 농민이 민비와 흥선대원군의 경쟁 구도에서 '못살겠다. 뒤집어 보자' 격한 민중들은 호미. 곡갱이. 삽..그리고 온갖 농기구를 양손에 들고 조선의 차별 제도 불만을 스스로 해소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동학농민을 완강하게 반격에 나선 지주 세력 손에는 농기구 대신 총이 들려 있었다.
동학당. 동학 불한당 무리는 무찌려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수 많은 동학농민들의 피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동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6살의 안중근은 아비 안테훈과 함께 동학당 무리들을 격렬하게 대항했다.
한일합방.
합방이란 단어는 두 나라가 대등한 관계에서 합한것을 의미 한다라고 사전적 뜻 풀이다.
그럼 조선의 입장에서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에 한일합방 문구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한일병합.
일본 외무성 정무 국장의 주장으로는 이러하다.
"나는 한국이 완전히 멸망하여 제국의 영토가 되었음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그 어조가 그다지 과격하지 않은 글자를 고르고자 여러가지를 고려했다. 결국 적당한 문자를 발견할 수가 없었던 까닭에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은 문자를 선택하는 것이 득책이라 생각하여 병합이라는 문자를 사용하였다."
한국강제병합.
조선의 입장에서는 일본에 의해 강제로 병합되었기에 강제병합 표현이 올바르다.
일본은 아무런 물리적 저항 없는 조선을 너무 쉽게 집어 삼켰다. 조선입장에서는 국치스러운 날이 아닐수 없다. 을사오적을 비롯하여 조선의 대신들은 그저 일본의 강제 병합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순종의 포고문 요지는 '나라를 잘 다스려야 했는데, 몸이 허역하고 약하여 조선을 일본에 양도 할테니 조선인들은 쓸데 없이 행동하지 말고 하던일 묵묵하게 하며 일본 말 잘 들어 동양 평화에 일조 해라.'
요런 무책임하고 황당한 포고문이 아닐수 없다 그에 반하여 통감부 자작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포고문에 자신이 부임한 이유는 "생민의 안녕과 행복을 증진고자 하려는 것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 함부로 망상을 다하여 정무를 시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결단코 용서 하지 않을 것이다."
한일강제병합후 한반도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이루어 졌다. 데라우치 마사타케는 마치 새로운 나라 조선에 일본에서도 시도 하지 않았던 신 도시 개발을 하듯 여러가지 사업 구상을 실현했다.
구불었던 도로가 확장되고. 철도가 생겨나고. 의료원이 생기고. 학교가 운영되고. 급격하게 사회 여러 분야의 변화는 많은 조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일본사람들은 깨끗했어야"
어린 울 엄니의 기억 속에 일본 사람들의 이미지는 조선인과 달랐다.
조선의 위생은 심각하였다. 한양의 길 바닥은 똥 냄새와 똥으로 가득하여 때로는 밤길에 똥을 밟아 미끄러져 넘어지는 경우가 허다 했다.
강 상류에 방치된 똥은 강 하류로 흘렀고 목 마른 조선인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다.
위생이 이러다 보니 인간의 수명이 온전 하였겠는가? 부모님은 어린 아이들의 사망률이 높아 첫 해 두 해를 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름을 '개똥이' '소똥이' 하며 천박스럽게 지었다.
우덕순은 안중근의 거사에 동행한 인물이다.
그는 안중근에게 '왜?' 라는 질문을 하지 않고 무조건 안중근의 거사에 동행을 결정했다. 그는 인중근과 달리 부유하지도 않았고 배움도 없었다. 안중근에게 권총과 총탄을 주었다.
안중근은 이석산을 권총으로 협박하여 백 루블을 빼앗았다. 이석산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한인 후손으로 재력이 있고 러시아 암시장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의병 부대에 보내기도 했던 인물이다.
안중근과 우덕순은 겉옷 한 벌과 셔츠를 샀다. 머리도 깎아 깔끔하게 보였다. 안중근이 거사를 계획하는 중 조선에서 그의 아내 김아려가 청국 세관에서 서기로 근무하는 정대호와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봉천. 장춘을 지나 하얼빈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종을 앞세워서 만월대를 시찰하던 이토의 사진. 이토는 덩치가 작다. 거사를 치루기 전 이토의 얼굴을 다시 한번 숙지 했다.
"바라. 이게 이토다"
우덕순이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가방 속을 뒤적거려서 총알 네 발을 꺼내 우덕순에게 주었다.
"나는 내일 열차로 하얼빈으로 돌아간다. 너는 채가구에 하루 더 남아 있어라"
"내일 헤어지면 끝이겠구나"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이부자리를 깔고 나란히 누었다.
안중근은 아침 이홉시의 하얼빈역의 구도를 생각했다. 26일 아침, 새벽에 가는 눈이 내렸다. 안중근은 새로 산 옷으로 갈아입고 하얼빈 역으로 나갔다.
이토의 열차는 아홉시 십분에 하얼빈역 플랫폼에 도착했다. 코콥초프가 이토의 객차로 들어갔고 일본 총영사 가와카미가 뒤따랐다.
이토는 객차에서 내렸다. 러시아 의장대가 이토에게 받들어 총으로 경례했다. 코콥초프와 러시아 관리들이 이토 뒤따랐다.
'저것이 이토로구나..저 작고 괴죄죄한 늙은이가'
이토 주변에 키 큰 러시아 군인들이 서성거렸다. 러시아인들 틈새로 이토가 보였다. 이토는 조준선 위에 올라 있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둘째 마디가 방아쇠를 직후방으로 당겼다.
총의 반동을 손아귀로 제어하면서 다시 쏘고 또 쏠 때, 이토의 몸에 확실히 박히는 실탄의 추진력을 느꼈다.
러시아 헌병들이 안중근을 몸으로 덮쳤다.
'코레아 후라'
이토는 하얼빈역 철도 위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