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다양한 죽음 중에는 유독 홀로 쓸쓸하게 맞이하는 고독 사를 안쓰러워 한다. 그러나 현실은 누구나 혼자서 태어나고 홀로 죽는다. 늘 평생을 혼자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인생 아닌가?
'외로워 사람을 만나야겠다'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너무 쉬워진 시대에 외롭다며 상대의 탓으로 돌려 스스로를 합리화 하는 것 아닐까
"집에 돌아가도 되"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을 듯 캐나다로 대학을 선택하여 떠났던 딸이었다. 집으로 내려온 딸은 코로나 첫 해 주변 친구들이 기숙사를 떠나 각자 집으로 돌아 갔을 때 혼자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며 알려 주었다. 얼마간 휴식을 끝내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 가야 할 날이 다가 오는 어느 날, 저녁 식사 중 돌아 가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보이며 울었다.
"너 고등학교 졸업할 때 집을 나가면 다시는 집에 돌아 오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때 모습은 어디로 갔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딸을 바라보며 어떻게 내가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말했다.
"와인 맛이 좋다"
아무런 답변을 딸은 하지 않자 괜한 술 맛이 좋다며 화제를 돌렸다.
나태주 시인의 '저 만치 혼자서' 글 중 '사는 방법도 많이 바꿨으면 싶다' 는 문장이 있다. 짧은 문장은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것처럼 다가 왔다.
딸 엄마에게 "너가 죽으면 내가 많이 울 것 같다, 너는 내가 죽으면 나와 같은 생각이냐" 며 문자를 보냈다. 나의 질문에 답변은 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40대를 허무하게 보내고 이제 50을 넘어 60을 바라보는 딸 엄마의 삶은 어떤 면에서는 더 고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안쓰럽다.
"딸 엄마 사진을 보며 108배 절을 하는 것 어때요"
지인은 아들 때문에 너무 힘들어 108배 절을 하기 시작하였고 몇 개월 시간이 지나자 아들에 대한 마음이 너무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며 나에게 조언을 했다. 그의 조언에 따라 108배 절은 하지 않지만 뉴저지 절을 찾을 때면 딸 엄마의 건강을 위해 나는 절을 하며 마음 속 기도를 하게 되었다.
'딸 엄마 힘들지 않고 건강 지켜 주세요'
내가 변하였다. 그러자 편하게 딸 엄마를 바라 보게 되었다. 아니 사실은 노력 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나의 변화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거라면 다음 생의 나를 위해서 현생에서 딸 엄마와의 관계를 잘 해결 하고자 하는 철저한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하루 빨리 고독에서 벗어나 인생은 아름답고 즐겁다는 것을 딸 엄마가 느끼며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