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을 둔 아빠이다.
집 주변에 산을 홀로 걷다가 쓰러져 있는 나무 위에 앉아 주변 산새를 바라 보고 있다. 조용하고 새 소리만 들린다.
집에서 준비해 온 물병 하나에 물을 다 비우고도 멍하니 앉아 생각에 잠겼다.
딸은 취준생이다.
처음 취준생 단어를 들었을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한국 사회에서 긴 낱말을 축약하여 표현하는 것이 일반화 된 사실을 알고 신기했다.
몇년 전 신문 논설위원의 글이 떠 오른다.
그의 아들은 취업을 준비 하는 취준생이었다. 신문 사설 내용은 자신의 아들 또래 젊은 취준생 이야기이었다.
"딸 취업 어떻게 되었냐"
언제 부터 나는 지인들 질문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답변을 찾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이러한데 당사자인 딸 심정은 오즉할까?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취업문이 높자 상위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높다. 대학원 진학 했네. 박사학위 공부 하네 등 그들 또한 높은 취업 문턱에 벗어 나고 싶어 이유 있는 구실을 찾는 방법 중 하나로 공부를 선택한다.
학자금 빚은 상대적으로 늘어 나고, 늦은 사회 진출과 학자금 융자 부담금 때문에 부모세대와 달리 그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 해야 한다.
부모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포기 하는 그들의 선택을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거와 사생아 출생은 낭만적이지도 않는 엉뚱하게도 자유연애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새로운 문화를 양성했던 프랑스의 영향은 컸다.
태국에서는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하는 법이 국회에 통과 되었다. 이제는 동성 결혼에 대하여 놀라지도 않는다. 행여 동성 결혼을 지탄하는 발언을 하게 되면 오히려 법적 구속을 받게 된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 모든 나라의 집권당은 노력한다. '우리가 새로운 일을 창출 했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 이제는 특별한 일이 되어 국민들로 부터 호응을 받는다.
요즘 한국 또한 젊은 세대에서는 동거는 자연스럽다. 여자친구와 남자친구 몇년 동거 기간을 지나 결혼으로 연결되는 것은 높은 이혼율에도 좋은 영향을 줄거라 믿는다. 그런데 문제는 동거로만 끝나는 것이다. 안전한 직장이 보장이 되어 있지 않다 보니 결혼과 출산을 회피하며 동거만을 하는 젊은 세대가 늘어 나고 있다.
몇년 전 한국에서는 1인 가구가 34%가 되었다는 발표의 기사를 보았다. 아마 직장 문턱이 높으면 이 수치는 해를 거듭 할수록 늘어 날것이다.
나의 딸 또한 높은 직장 문턱의 현실의 벽에 직면하여 뚜렷하게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삶의 경계에 있다.
경계는 꽃 길 보다는 가장 위험하고 힘든 구역이 아닐수 없다.
다행이도 딸은 몇일 전 면접을 했다.
본인 스스로 정성을 드려 면접 후, 요청 받은 자료를 준비하여 담당자에게 보냈다.
딸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취준생들 간절함이 현실로 실현되길
산을 걷다 마음 속으로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