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작
'집 터가 좋네요'
뉴저지에서 방문한 스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말을 했다.
'스님 먼 길 운전은 힘들지 않았나요?'
나의 질문에 스님은 '함께 온 아이들 때문에 무료하지 않게 내려왔습니다' 하며 합장하며 답했다.
방학 기간이라 제주에서 미국으로 여행을 온 일행 4명의 여학생들이 스님과 여행에 동행을 하였다. 딸 보다 나이가 어린 여학생들은 서먹서먹함 없이 붙임성 좋게 딸과 대화를 하며 지냈다.
'언니 한국말 잘한다'
그들의 칭찬이 좋았는지 딸 또한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했다.
3박 4일의 여정을 끝내고 스님이 뉴저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분주했던 시간이 지나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이 마치 언제 읽을래? 하듯 보였다. 일부러 책을 외면해 보았던 며칠. 머릿속에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찝찝함으로 남았었다.
작가는 책 제목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책 제목은 출판사 창비의 마케팅에 의해 전략적으로 만들진 제목이라고 했다. 작가의 기대와 달리 책 제목은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했고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고 작가는 창비 출판사의 판단이 맞았다며 고백했다.
젊은 독자들에게 전라도 사투리가 쉽지 않았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니 사투리의 표현이 살아있는 신비함을 알았다는 댓글을 읽었다며 작가는 말했다. 전라도 출신인 나에게는 사투리가 낯설지 않았다.
'또 올라네' 혹은 '또 봄세'라는 전라도식의 헤어질 때 인사말은 잊었던 기억을 떠 오르게 하고 정겨웠다. 전라도를 벗어난 후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인사말을 듣거나 사용해 보지 않았다.
'빨갱이들은 밤에 산에서 내려와 먹을 음식을 주면 아무런 해코지도 하지 않았는데 낮에 군인이나 경찰이 찾아오면 빨갱이에게 음식을 주었니, 어쩌니 하며 사람들을 엄청 힘들게 했지'
할머니가 어린 나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책을 읽으며 떠 올랐다.
책 내용은 외동딸 (전기 고문으로 정자 생성이 문제가 있었던 작가의 아버지는 한의사 친구의 도움으로 늦은 나이에 믿기 힘든 기적처럼 딸을 얻었다) 아라는 빨치산 남부군 소속 짧은 4년 기간 활동했던 아버지 고상옥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 (좌/우익)과 아버지의 인연을 이야기로 풀이 한 작품입니다.
'사람 살려'
전봇대 위에서 작업한 인부가 전봇대 아래서 일하다가 위에서 떨어진 쇠 덩어리에 머리를 찧어 붉은 피가 철철 튀어나와 아무 비명도 내 지르지 못하는 동료를 대신하여 전봇대 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사람 살려' 하며 고래고래 동네 사람들에게 구원 요청하는 모습이 소설 첫 문구를 읽다가 어린 시절 보았던 장면이 또 올랐습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어느 소설과 달리 첫 시작의 문구는 강렬하게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 전봇대의 사고 현장을 보았던 나는 개인적으로 첫 문구를 통하여 어린 시절 친구들과 야구/축구 놀이를 했던 공터를 연상하게 하였답니다. 그때 쇠 덩어리에 머리와 얼굴을 크게 다쳤던 그 아저씨는 지금 괜찮을까. 사고의 흔적이 흉터로 남아 있지 않을까. 이런 잡다한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답니다.
19살에 지리산 빨갱이 활동을 했던 저자 아라의 아버지 삶은 늘 도망자 그리고 감시를 받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 했답니다. 또한 아버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 빨갱이 집안이라는 족쇄의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했답니다.
작은 아버지는 5살 때 국군에게 우익이었던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조상으로 물려받은 삶의 터전마저 불에 태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말 많았던 작은 아버지는 말문을 닫고 살아야 했답니다. 그는 늘 술에 취해 있었고 늘 형인 아버지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대들기도 하였답니다. 동생의 횡포에도 아버지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그저 담배만 피어 되었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4년 남부군 활동 때문에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을 홀로 감당했을 동생...
'오죽했으면 그러겠냐'
아버지는 늘 입에 달고 살았던 18번이었답니다. 아버지는 고향 구례 반내골을 떠나지 않았답니다. 고향 구례 반내골은 아버지의 전장이었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국군의 총질에 희생당했던 곳입니다. 사상이 달라 서로 총질을 했던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저자는 구례는 친일파 숙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도시였다고 말합니다. 친일 행위로 돈을 많이 벌었던 고씨 집안사람이 해방 직후 혈기왕성한 젊은이가 낫을 들고 당산나무 아래로 끌려 나온 친일파 그를 공개 처형 하고자 선동하는 젊은이 어머니가 '그 어른 아니었으면 니가 산 목심이 아니여'라는 한마디에 군중은 저마다 서로 친일파 어른의 도움을 받았다는 증언이 이어지며 쳐 죽이자고 했던 젊은이들이 그만 머쓱하게 흐지부지 흩어졌다고 합니다.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허는 것이여'
저 또한 이 부분의 글을 읽으며 가깝게 지냈던 분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큰 공장을 남과 북에 두었는데 해방 후 직원의 도움으로 목숨을 잃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곳이 구례라며, 아버지는 '긍께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하고, 배신하고, 살인하고, 용서한다는 것이었답니다.
이 부분의 문장에서 모임에서 읽었던 '내가 틀릴 수 있다' - 'I may be wrong' 책을 연상하게 되었답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아마 '긍께 사램이제'라고 바꾸어 생각해도 전혀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합니다.
전직 빨치산 동료들이 아버지 고상옥의 추모제에 모였답니다.
'원래 우리 동지들이 가면 통일 애국장으로 치르오, 그런데 고 동지는.... 알겠지만 자수를 한 터라...'
사실 아버지 고상옥은 1952년 위장자수를 했답니다. 최상급자인 전라도당 김선우 위원장만 그 사실을 알았답니다. 1989년 석방된 비전향장기수는 반내골로 아버지 고상옥을 찾아왔답니다. 배우를 해도 될 법한 인물의 그는 만석꾼의 장손으로 동경 제대 법학과를 졸업한 지성이었답니다.
노동이 힘들다고 고백한 전직 빨치산 그는 아버지에게 북한에 간다고 신청을 했다며 고백을 합니다. 그는 북으로 떠나기 전 딸 아라를 만나 '통일애국인사 고상옥 추모제'라고 적힌 종이를 한 장을 주며 진정한 혁명가였다며 알려 줍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자가 죽은 자의 빈소를 방문합니다.
사촌 오빠는 말기 암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는 육사 합격하고도 신원조회에 육사 입학이 취소가 된 빨갱이 집안 피해자입니다.
늘 빨갱이 형 때문에 원망을 하던 작은 아버지도 형 고상옥 장례식장에 왔답니다.
이 문구를 읽으며 저는 나의 작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떠 올랐답니다. 나의 아버지는 동생이 생을 마감하기 전 간절하게 찾았으나 아버지는 작은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않았고 장례식장도 가지 않았답니다. 이유를 잘 이해하고 있어 아버지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가지 않았다' 전화 넘어 아버지는 이렇게 말해 주었답니다.
일찍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는 6남매 장손으로 아버지의 역할을 했었답니다. 아마 너무 지쳤고 '오죽했으면 그럴까' 아버지의 결정을 이렇게 이해하며 받아 드렸던 기억이 있답니다.
'천수관음보살만이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애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딸 아라는 이렇게 아버지에 대하여 고백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의 딸은 나의 얼굴을 몇 개를 보았으며 나는 나의 아버지의 얼굴을 몇 개 보았을까? 일 년 전 난생처음으로 영상 통화 중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합니다' 쑥스러운 인사를 하였답니다.
아들의 쑥스러운 인사에 아버지는 잠시 당황하였답니다. 그리고, 그냥 웃음을 보여 주었답니다. 아버지도 또한 무척 쑥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여운은 반나절 남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