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
허리춤에 여러 가지 목공 공구를 차고 선한 웃음을 보이며 반갑습니다 하며 나에게 인사를 걸어 주었던 승권 형이 14년 미국 생활을 5월 이달 말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영국 귀국합니다. 그동안 그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던 지인들과 성공회 신부님을 송년회 저녁식사에 초대하였습니다.
승권 형은 한국에서 YMCA에서 은퇴를 한 후 잠시 누나 만나러 미국에 방문하였다가 시작한 공부가 14년을 보내게 되었답니다.
"내가 아프지 않고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를 했던 것은 하나님 은혜"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며 고백을 합니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경제생활을 하며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의 성실함을 옆에서 지쳐 보았던 나는 그의 박사학위 소중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 번쯤 수업을 빠지며 나태할 법도 했는데, 형은 무단결석이나 늦은 나이에 성실하게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 형에게 나는 이조시대 아무 재능도 없이 글만 읽는 양반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허리춤에 여러 공구를 찼던 모습과 달리 못 하나도 제대로 박지 못하는 잼뱅이 없습니다.
"아내가 집에 못질하거나 형광등 바꾸는 것도 다 했어"
그런 형에게 육체노동을 하며 공부하며 살아야 했던 14년 시간은 정말 신기할 정도이었습니다. 나이 70.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노인 상담 봉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송년회 저녁 식사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젊은 노동력도 남아 돌아가는 한국 사회,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람 사는 세상' 모임 대표를 맡았던 참석자 중 한 분이 어떻게 요즘 지내냐며 저에게 안부를 묻자 직장을 잃고 지낸다고 답을 하자 놀라며 왜 그렇게 되었냐며 이유를 알고자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에게 물어보세요" 하자 모두 한바탕 소리 내며 웃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한국 대선 주자들로 흘렀습니다. 같지만 다른 생각을 가진 7명이 서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 내놓았습니다.
이재명. 김문수 그리고 이준석.
"나의 소원은 사람들에게 팔이 아플 정도록 책에 서명을 하고 싶다"
딸은 엉뚱한 나의 이야기에 무슨 소리야 하듯 눈만 멀뚱멀뚱 저를 처다 보았습니다.
'나는 이렇게 딸을 키웠었요' 뭐 요런 책을 출판하여 구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서명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라며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오래전에 성공적으로 미국 우수한 대학에 진학한 학생 부모에게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 당시 어린 딸에게 내가 했던 말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정치를 했으면 하고 나는 딸에게 말을 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오늘 밤 저희를 찾아주신 우리의 정치인을 소개합니다" 하며 딸의 이름을 정치인 단어 뒤에 붙이며 4살 된 딸을 옆에 두고 나는 마치 아이가 알아듣는 것이 처럼 소개를 합니다.
딸이 정치 공부를 하겠다고 나에게 말할 때 3번씩이나 이공계 선택을 권유했습니다. 졸업 후 직장을 고민하는 너무나 현실적인 생각이었습니다. 딸은 정치를 선택했습니다.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예정된 삶이 운명적으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여 산다고 알았다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았듯이. 딸 또한 어떤 예정된 운명을 살아 갈거라 생각하니 딸의 정치 전공을 받아 드릴 수 있었습니다.
65세 이상 한국 이중 국적 자격 나이가 누가 알겠어요? 40살로 혹은 30살로 낮추어 어린아이의 출생률을 높이게 될지?
정치 또한 지금과 달리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후보자 자격요건에서 박탈당할지.
세계 우수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현지에서 전문 경험을 습득한 2-3세들의 한국 정치 진입은 한국 정치판을 완전히 다르게 바꾸게 될지.
오랜만에 만나 함께 나눈 저녁식사는 이들과 어울려 '정의'라고 생각했고 외쳤던 10년 전의 모여 나누었던 시간을 떠 오르게 했습니다.
잘 가시오. 서로 연락하고 지내요.
잘 지내세요. 고마웠습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들의 악수로 모두 저희 집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