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

by 수환

'공'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없는 상태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도 그런 상태입니다.

제가 느끼는 '공'은 귀찮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안에서 현실 도피하고자 하는 생각이 가끔 밀려옵니다.


'무엇이 중헌디?' 스스로에게 묻기도 합니다. 중요한 일을 순서대로 차분하게 처리하면 되는데, 마음이 요동치고 있으니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어서 이러는 것일까요?


스님의 법문도 듣고, 혼자 기도하며 몸을 움직여 허리를 굽혀 불상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두 손을 모아 절을 하다 보면 이마에서 땀이 흘러 등을 타고 내려옵니다. 해결되지 않는 무엇이 마치 음식을 섭취하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가슴에 멈춰 있는 듯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닌지?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걸까 하여,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저에게 대입해 보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 토요일 아침,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환' 그림을 나누었습니다. 방탕하게 자신 멋대로 살다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사랑으로 품어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은 아버지의 날입니다. 참여한 분들이 '나라면 탕자 아들을 받아줄 수 있을까?'라는 재미있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 보니, 램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처럼 탕자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내가 늙고 힘들 때, 경제력이 없는 나를 자식이 챙길까? 그들도 자신들의 삶이 있으니까요.


모임에 참석한 신부님은 자신의 딸들에게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돌아오라. 너를 반겨주는 집이 있다.'고 알려주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한다고 하셨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모두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림은 소설이나 시와 달리 작가의 설명 없이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보다 해몽"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대화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AI와 종교, 그리고 평소 다르지 않은 종교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어제는 인도에서 붓다가야 국제수행학교를 이끌고 있는 붓다빠라 스님의 8정도 수행체계 강연이 있었습니다. 지난 3일간 한국으로 돌아가신 ㅇㅇ스님이 저에게 늘 하셨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알아차림'이었습니다.


성경은 알아차리기 위해 꾸준히 깨어 기도하라고 하듯, 숨을 쉬더라도 알아차리고 있으면, 탐진치의 굴레에서 생활하더라도 알아차리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면 빠져 나오기 힘들지만, 순간 알아차리면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뒷마당 잡초를 뽑고 진딧물을 깎으면서 제 머리에서 맴돌았습니다.


저의 공한 마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공한 마음이 불안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알아차리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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