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딸의 남자 친구 마테오는 식당에서 장소를 옮겨 뚜레쥬르 빵집에서 주문했던 음료를 식탁에 가져다 내려놓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그의 말의 뜻을 못 알아듣던 나는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딸의 직장 상사가 지어 주었던 별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단어는 오래전 보았던 영화 ‘조스’의 장면이 생각났다. 관객들의 마음을 조이듯 저음의 배경 음악과 함께 수면 위에 까만 꼬리만 드러내고 먹잇감에게 조용하고 민첩하게 직진하는 살벌한 상어.
“맞다. 그 상사 별명 잘 지어 주었다. 너도 그 느낌 알지?”
마테오는 고개를 흔들며 긍정도 부정도 아닌 표현을 옆자리에 앉은 딸의 눈치를 살피며 손바닥을 허공에서 흔들어 보였다.
작년 12월, 딸과 마테오는 나의 생일날 ‘흑백 요리사’에서 인기를 얻은 에드위드 리의 SHIA 식당에서 멋진 저녁을 사 주었다. 몇 차례의 코스 요리가 멋지고 맛나게 제공되었다. 처음 맛보는 요리 맛을 음미하며 서로의 음식 평도 나누었다.
그들에게 미슐랭 초밥 오마카세 식당에서 딸 생일 저녁식사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들의 반응은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고 좋아했다. 워싱턴 디시의 몇몇 식당의 리뷰와 분위기를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확인했다. 딸의 생일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지며, 퇴근 후 1시간이 넘게 밤 길을 운전하고 복잡한 워싱턴 디시의 도심을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가까운 일식당으로 마음을 이끌었다.
“너희들 퇴근하고 내가 보내준 식당으로 와라”
“이곳 괜찮은 식당이야?”
문자의 내용은 나의 결정에 실망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작은 식당이라 예약을 받지 않아, 행여 자리가 없어 기다리게 되는 상황을 걱정했으나 종업원의 안내로 빈자리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전에 내가 두 번 왔는데, 사시미도 신선하고, 초밥 맛도 일품이었다. 너희들이 좋아할 거야. 마음껏 시켜라”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옮긴 뚜레쥬르 빵집, 딸은 “다른 직장을 찾을 거야” 딸은 직장 상사와 개인 평가 자리에서 “너는 일 년도 나와 함께 일하지 않았는데, 얼마나 안다고 낮은 업무 평가를 하냐” 자신의 불편한 속마음을 터 놓았다고 했다. 상사는 질세라 왜 기대치 이하 평가를 했는지 설명해 주었지만 딸은 그의 설명을 하나씩 반박하여 되돌려 주었다고 덧 붙였다. 그리고 “너, 내가 그만 두면 힘들 거야. 내가 하는 업무가 많은 부분에 참여하고 있어서” 쐐기를 박았다고 했다. 노동에 대한 정당함을 스스로 싸워 얻고자 하는 딸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직장 상사는 메릴랜드 주의 대학에서 왔다. 연방정부 자금 지원 관련으로 폐지된 DEI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의 충책임자인 그의 사연이 지역 뉴스에 알려지며 지금 직장의 사장으로부터 발탁된 인물이었다. 그는 사장에게 임원직으로 막중한 위치에서 보여주어야 할 성과(?)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딸은 전임 상사의 강퇴로 새롭게 함께 일하는 그의 칭찬을 나에게 자주 했었다. 상사하고 일하는 것이 참 즐겁다는 말을.
그런 그에게서 낮은 업무 평가를 받은 딸은 힘들어했고 실망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항의했다. ‘나 없으면 너 일하기 힘들 거라고’
연말 휴식이 끝나고, 새해가 왔다.
딸의 예상처럼 결국 그는 딸에게 꼬리를 내려 자신의 평가를 수정하였다. 그리고 딸의 겉에서 맴돌며 눈치를 본다고 딸은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는 딸을 알았다.
상어라는 별칭을 그에게로부터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