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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쓰이는 독자 Jul 01. 2024

안경원에서 있었던 일 10

신뢰

띠로리로리


“어서 오세요. 오늘은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나를 아주 이뻐해 주시는 반찬가게 사장님이 재방문해 주셨다.


“아, 이 안경이 다 좋은데 TV 볼 때 조금 번져 보이더라고.”


“아 그러셨군요. 이쪽으로 앉아 주세요.”


시력검사를 위해 사부작거리고 있을 때, 고객님이 먼저 말을 걸어 주셨다.


“사장님이 저번에 안과 한 번 가보라고 하셔서 바로 안과 가서 상담받고 쌍꺼풀 수술 했는데, 확실히 눈이 가벼워지고 좋더라구요.”


“너무 다행이네요!”


일이라는 것을 하다 보면 특별히 애정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생기는 순간이 있다. 40, 50대 어른들이 보기에 이제 갓 32살인 어린 사람이 하는 말은 어느 정도 흘려듣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고객님은 내 이야기를 참 잘 들어주시는 고마운 분이다.


“기계로 들여다봤는데 동공을 가리는 부분이 현저히 적어졌고, 눈이 조금 좋아지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동공을 가리고 있던 눈꺼풀이 조금은 얕아져서일까, 정말 흔치 않은 일이지만 눈이 좋아진 상태였다. 눈이 좋아졌다는 소식에 감정 표현이 덤덤한 고객님도 살짝 웃어주셨다.


“원래 안경 착용하신 상태로 검사 진행해 보겠습니다.”


원래의 안경을 쓰고 계신 고객님을 바른 자세로 앉게 한 뒤에 원래 안경의 시력을 덜어내는 렌즈를 덧대었다.


“오, 선명해졌어요.”


긍정적인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


“이게 도수를 낮춘 건가요?”


“네, 맞습니다.”


정확하게 하기 위해 두세 번 반복해서, 고객님이 차이를 명확하게 느끼는지 테스트를 진행했다.


“확실히 선명해졌어요.”


“고객님, 아무래도 도수를 어느 정도 덜어내야 할 텐데, 이런 경우 하루 이틀 지나면 원래의 안경이 더 편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도수를 변경할 때, 특히 원래의 도수에서 덜어낼 때는 고객님들에게 명확하게 심어줄 필요가 있어 또박또박 한템포 쉬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컨디션의 차이로 어느 정도 시력의 갭이 발생할 수 있으니 검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점 기억해 주세요!”


“오, 그렇군요.”


“또 지금 고객님의 몸이 변화하는 시기에 있는 것도 맞기 때문에 앞으로는 저랑 고객님이 잘 보이는 도수를 하나씩 찾아가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해주세요.”


“맞아요 맞아요 그럽시다.”


고객님의 긍정적인 반응에 TV가 잘 보이는 중간 도수를 찾고 새로운 테를 골라보았다.


“일단은 저렴한 걸로 하고, 나한테 딱 맞는 도수를 찾으면 그때 좋은 놈으로 하나 하게요!”


“네, 고객님 편하신 대로 하시게요.”


나의 시원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고객님이 많이 흡족해 하셨다.


“아유, 사장님이랑 나랑 참 궁합이 잘 맞아.”


고객님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뿌듯했다.


“저야 고객님이 이렇게 저를 믿어주시고 제가 제시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하다는 나의 솔직한 발언에 오히려 눈을 휘둥그레 뜨신다.


“전문가 말을 믿지 누구 말을 믿어요?”


“고객님들 중에는 상술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셔서요.”


‘에이’ 하시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저으신다.


“나는 사장님 믿으니까 잘 해주세요. 모레쯤에 선글라스 하나 가져올게요!”

고객님의 믿음에 방긋방긋 웃음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편하실 때 방문해 주세요!”


완성된 안경을 들고 나가시는 고객님에게 사모님 것까지 사탕을 넉넉히 챙겨드렸다.


직업에 있어서 가진 바 능력을 총 동원하여 고객을 응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고객에게 의심받고 오히려 평판을 깎아 먹을 수 있는 류의 조언은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하더라도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노력을 쏟은 고객님이 나의 진심을 알아주는 순간은 마치 고생 끝에 과실을 얻어낸 듯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 기쁨을 양분 삼아 오늘 하루도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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