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말보로 카디건을 입고 1등의 장식을 지나다

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by 목림


새 옷을 사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뭔가 사연이 있는 옷을 사고 싶고, 처음 보는 브랜드의 흔치 않은 디자인을 찾고 있다. 내면의 힘이라는 것도, 그럴듯한 외면이 없으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뭐든 표현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마리엔광장의 후미진 골목에는 정확히 무엇을 파는지 불분명한 상점들이 있다. 실내 잡화시장쯤 되려나. ‘컨트리풍의 야외 활동복, 카디건 말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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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디건’이라는 의복은 나에게는 무언가 얌전하고 점잔 빼는 인상이었는데 올 굵은 ‘코듀로이’ 형태의 검은 이 카디건은 아니다. 거칠다. 멋진데 뽐내지 않는다. 가격은 꽤 비싸다. 그래도 산다. 순전히 내 의지로 결정한 터라 상당히 소중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말보로’ 카디건을 입고 나온 마리엔광장이 별안간 한눈에 들어온다. 관광객으로 포위된 시계탑도 보이고 싱싱한 과일들과 치즈로 즐비한 야외의 시장, 거리의 악사, 아이스크림 가게, 지하철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들. 다 보인다. ‘딥 퍼플’이 멋져 보여 밴드를 했었고 ‘파파로티’가 있어서 성악을 했다. ‘빌 게이츠’를 보면서 컴퓨터 전문가를 꿈꾸는 삶들이 생겼을 거고, ‘마이클 조던’처럼 되고 싶은 농구 지망생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워런 버핏’을 보면서 주식을 샀을까. 그런데 모두가 그들이 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1등을 위한 장식으로 살아간다. 이탈리아와 독일 노래의 단적인 감정 표현의 차이가 있다. 대성통곡이 이탈리아의 오페라면 독일의 가곡은 같은 무게의 감정을 견디다 터지는 한 방울의 눈물이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고, 그러고 있긴 하다. 그런데 가끔은 누가 좀 알아주면 좋겠다. 난 썩 명랑하지 않다고. 오늘은 독일에서 흔치 않은 맑고 화창한 날이다. 붕붕 날아다니는 생각이 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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