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시장: 이방인의 기억 가판대
‘헤르티’라는 백화점이 있다. 이곳 4층 구석에는 그저 공간 섹터로 구분된 이발소가 있다.
4주에서 6주 단위로 난 여기서 이발을 한다. 반쯤 벗겨진 머리칼에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을 가진 나이 지긋한 이발사는 이제는 나를 아는 눈치다. 특별히 날 반기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친절하지도 않지만, 결단코 불친절하지도 않다. 무심하지도 않고 섬세하지도 않다. 안부 따위는 묻지도 않는다. 뭐 나도 안부를 묻지는 않으니까. 늘 그렇지만 난 세 마디면 족하다.
‘뒤의 머리와 옆의 머리는 짧게 해 주시고 앞머리는 남겨 주세요.’ 이게 다다. 그러면 사각사각 내 머리는 잘려 나간다. 아마 내가 나중에 치매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잃어도, 최소한 이 세 마디의 독일어 문장은 안 잊어버릴 거다. 국적도 이름도 모르지만 난 이 이발사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일단 이발비는 비싸지 않고 늘 머리모양이 너무 만족스럽다. 세상 어디든 휘황찬란한 미용실은 있다. 난 그런 곳에 들어가는 건 남자가 할 일이 아니라는 신념이 있었고 이곳은 나의 자만을 충족시키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샴푸나 서비스는 꿈도 못 꿀 곳이지만 그까짓 머리카락 조각은 내가 훌훌 털어내면 될 일이다. 물론 독일에 오기 얼마 전부터 세속의 꼬임에 넘어가 동네 유니섹스 미용실을 드나들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난 이발소 주의다. 나의 신념을 지켜준 이발사 할아버지가 고맙다. 어디든 찾아보면 쉄터는 있다.
‘헤르티’는 ‘칼슈타트’, ‘카우프호프’와 더불어 독일의 3대 백화점이란다. 대단한 곳에 있는 이발소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