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잘 내리지 않는 남쪽 지방에 살던 나는 어린 시절 귀한 눈이 오면 밖으로 뛰쳐나가 눈을 뭉쳤다. 눈싸움을 한다거나 눈사람을 만들겠다는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 하얀 물체가 땅 위에 쌓였다는 것이 신기해서 그것들을 한데 모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두 손으로 눈을 움켜쥐었을 때 눈부시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가는 작은 결정들이 신기했다. 그러다 제법 동그란 모양이 갖춰지고 그 위에 조금씩 하얀 살결을 더해가면 주먹보다 큰 눈덩이가 만들어졌다. 그 눈덩이를 눈밭에 올려놓고 굴리기 시작했다. 살살 굴리고 손으로 꾹꾹 눌러 다지기를 반복하면 어느새 눈사람의 머리가 되기에 손색없는 커다란 눈덩이가 만들어졌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작은 결정이 만들어 낸 위대한 결과물에 가슴이 뿌듯해지곤 했다.
눈덩이 효과!
어떤 일이든 처음에는 내 손안에 들어오지 않고 흘러버리는 것 같아 체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손에 닿으면 녹아버리던 눈도 노력의 결정을 더하고 다지는 시간을 가지면 어느새 눈덩이처럼 커진 변화를 마주할 수 있다.
오늘 아침 책 몇 장을 읽었다고 해서 지금 당장 큰 변화를 못 느낄 수도 있다. 책 한 권을 끝내고 타성에 젖은 생각이나 굳어진 습관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맑은 물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생각과 태도의 왜곡된 자세가 1도 바로 잡아지고 또 다른 책과 사유와 대화를 통해 다지기를 반복한다. 그 지난한 과정의 반복을 통해 눈덩이는 조금씩 커진다.
작은 도토리는 자신이 그렇게 큰 참나무가 될 것이라는 걸 알지 못한다. 어떤 도토리는 다람쥐에게 먹힐 슬픈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도토리는 사람들 손에 들어가 도토리묵이 되는 비참한 운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도토리는 자신의 꿈을 위해 준비 싹을 틔울 준비를 한다. 다람쥐가 저장을 위해 땅에 묻어서, 바람에 날려온 흙이 자신을 덮어주어서 기회가 왔을 때 싹을 잘 틔울 수 있는 준비를 한다.
사람보다 몇 배는 큰 참나무도 시작은 작은 도토리였다.
뿌리를 내리고 땅을 뚫고 올라가 마침내 참나무가 되는 것이다.
도토리의 시간을 견딘 열매만이 큰 나무가 될 수 있다.
모든 도토리는 큰 참나무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내면에 가지고 있는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어떤 것이 참나무가 될지 알 수 없다. 도토리가 땅에 심어져서 싹이 날 환경을 만났다면 열심히 싹을 틔우는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주변의 유혹을 물리치고 참나무가 될 자신을 아끼고 성장시켜야 한다. 도토리의 시간을 자기보다 몸집이 큰 밤을 보며 부러워하지 말고 잡다한 열매들과 잡담하느라 시간을 쓰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와 자신의 성장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모네는 인상파화가의 대표였다. 그는 햇빛에 비친 색의 변화를 그림으로 표현하다 말년에 시력을 잃어갔다.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그는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다. 시력을 거의 잃었을 때의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더 애잔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림에 대한 간절한 꿈과 열정과 집중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보지 못하면 머리로 기억해서라도 그림을 그리려는 작가의 열정에서 사람들은 그림을 넘은 감동을 느꼈다.
끔과 열정과 집중력을 가진 도토리는 언젠가 싹을 틔우고 멋진 나무로 성장한다.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릴지언정 꺾이지 않고 가지 몇 개를 세찬 바람에 날려 보낼지언정 기둥 전체를 내어주지 않는다. 멋진 나무로 성장하여 수많은 도토리를 맺는다.
팩트풀니스 책을 읽고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그 책 한 페이지에 적힌 '새벽에 좋은 정적인 운동'에 플랭크를 생각해 냈고 10년 동안 해오고 있다. 한 때 잘 걷지 못할 정도로 허리 상태가 좋지 못했던 나는 플랭크를 시작한 지 5년이 넘으면서 정형외과를 방문한 적이 없다. 그날 새벽 그 한 페이지를 읽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작은 결정이 나의 10년 후 건강에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처음 플랭크를 시작했던 날을 기억한다. 혼자 할 엄두가 안 나 유튜브를 보며 30초를 겨우 버티고 1분을 쉬다 또다시 30초를 버티며 겨우 3분을 채웠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운동을 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의식을 치른다고 생각했다. 작은 의식은 어느새 습관이 되어 자고 일어나서 물을 마시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날은 이런 눈덩이효과를 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분명 도토리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나의 작은 의식은 내가 멋진 참나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꿈과 열정과 집중의 순간이었다. 지금은 필사와 독서가 작은 의식에 포함되어 1시간은 훌쩍 넘는 미디엄 사이즈 의식이 됐다. 일을 하지 않고 쉬고 있으니 아침마다 하는 이 작은 의식에 여유도 함께 들어가 있다.
10년 전 도토리의 시간을 가지지 않은 나의 도토리는 그대로 먹어지고 버려졌지만 그 시간을 견딘 도토리는 이런저런 성장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