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나들이 Nov 01. 2024

낙하

 낙하


햇빛을 한데 받으려던 욕심과

더 푸르게 만들려 애쓰던 번민과

더 크게 부풀리려던 야망을

 증발시키고


몸피가

바스락 말라버린 잎이

허리를 굽혀

가을 바람결에

낙하한다.


비우고 가벼워졌으니 

가능한

낙하


욕심과 고민과

야망과 번민을  

세상에 던지고


자신을 기다리는

대지를 향해

낙엽은

춤을 춘다


먼저 도착한 낙엽들 위에

살며시 포개어진다.


적요한 산속에

풀벌레의 가라앉는 울음이

한때 여름 불볕을 치열하게 견딘

낙엽을 찬미한다


잎으로 살게 했던

대지와의

따뜻한 조우를 축하한다.



단풍이 떨어지기 전에 강화도 마니산에 다녀왔어요. 느긋한 단풍은 아직도 푸른빛을 띠며 바쁜 우리를 기다려 주고 있었습니다.


 마니산 정상으로 가는 길목, 큰 바위 위에 앉아 나뭇가지로 반쯤 가려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때 바스락 소리와 함께 바짝 말라버린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그 소리와 몸짓이 어찌나 감각을 자극하는지 시를 짓지 않고서는 못 견딜 정도였습니다.


 자신 안에 있던 두꺼운 욕망을 다 내던지고 겸손하게 말라버린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쓸쓸하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으로 새로운 만남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희망차 보였어요.


 어느 시인이 말했듯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는 만나지 못했던 다른 낙엽들과도 만나고

자신의 뿌리를 단단하게 받쳐주던 대지와도 조우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인생 2막을 시작하는 퇴직자,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 직장인,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어떤 일이 끝났을 때

지금 하는 일이 끝났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끝은 항상 시작과 만나니, 끝과 시작은 그 경계가 모호하지요.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곧 추운 겨울이 옵니다. 떨어진 낙엽은 잘게 부스러져 흙과 만나기도 하고 그대로 견디다 눈을 만나기도 합니다. 낙엽이 추운 겨울을 나는 방법은 대지와 또 눈과 따뜻한 포옹을 하는 것이겠지요.


추운 겨울이 있어 그들과 의 따뜻한 포옹이 더 소중해집니다.

새로운 시작에 마음이 춥고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서 따뜻한 포옹이 더 마음에 남는 것이겠지요.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면

새로운 곳으로 간다면

차가운 두려움 속에 더 빛날

 따뜻한 만남을 기대해 보면 어떨까요.




한 줄 요약 : 대지와의 따뜻한 포옹이 있어 낙엽의 낙하가 쓸쓸하지 않듯

                새로운 만남이 있어 새로운 시작은 차갑지만 따듯하다.



이전 15화 붉은 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