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인가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내다본 하늘에 분홍색 실구름이 눈부셨지요. 서둘러 양말을 찾아 신고 나갔는데, 분홍 실구름은 어느새 사라지고 무심한 해는 벌써 저만큼 떠올라와 있었어요.
허탈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갈까 망설이다 가던 걸음을 계속하며 몇 문장 끄적이다가 들어왔어요. 그래도 그 아침 창 밖에서 봤던 분홍 실구름은 아직도 마음에 물들어 있네요. 사진으로도 못 담을 만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는 일몰이 더 감사한 아침이었습니다.
며칠 전 그 아침 분홍 실구름을 봤던 것처럼 마음이 행복해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브런치의 귀한 글벗들과 박노해 시인의 사진 전시회에 다녀온 것인데요. 글벗들과 서촌 나들이한다고 좋아서 나갔었죠.
시인이 찍은 사진에는 새벽녘 내가 놓쳤던 분홍 실구름도 떠 있었고 해 질 녘 위로를 품은 붉은 하늘도 담겨 있었습니다.
사진 위에 쓰여 있는 시인의 영롱한 시 한 조각 한 조각은
제 마음의 떨림을 넘어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작은 공간 안에 있는 사진과 시와 글벗이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갤러리 카페에서 박노해 시인이 쓴 첫 수필 '눈물 꽃 소년'까지 사들고 따뜻하게 물들인 마음을 풀어놓았습니다. 가끔 시를 필사할 때 만났던 시인, 필명이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을 줄여서 만들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그는 생각보다 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그의 시를 찾아 필사를 했어요. 마음을 울리는 시를 눈으로만 남길 수는 없었습니다.
좋은 벗과 함께 여서 인지 멋진 사진과 함께 여서 인지 시는 투명한 구슬이 되어 가슴에 박힙니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동안 꽤 많은 벗들과 시인과 소설가와 인연을 빚었습니다. 벗들을 제외하고는 일방적인 인연이기는 하지만 굽이굽이 돌아가기에 길고 멀리 가는 강물처럼 굽이굽이 돌아가며 알게 되는 새로운 인연들이 참 귀합니다.오늘도 귀한 인연을 마음에 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