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9월은 초가을이 아닌 늦여름이 되어버렸다. 한낮에는 가을볕이라 하기에는 너무 뜨거운 햇살에 그늘과 에어컨을 찾아다녔고 아침 혹은 저녁의 스치는 순간에 가을 찾아 돌아다녔다. 숨바꼭질하는 가을을 찾으며 책과 더 친해지려 라라크루 소모임에 독서 인증샷을 올리기 시작했다. 밥동무, 차동무로 만나는 소설과 산문 속 인물들이 정겨웠다. 식사를 하며 책을 읽으니 식사가 끝나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9월의 추석은 추석 전에 있었던 대학 수시 원서 접수로 인해 뒷방 신세를 졌다. 온 신경이 원서 접수에 쏠려 행복일기도 차마 쓰지 못했다. 올해 초만 해도 의대 증원 효과로 올해 고3 현역들은 최대의 수혜자일 것이라는 둥, 전체적인 성적 컷이 내려갈 거라는 둥 낙관적인 파티분위기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역대 최고N수생 유입으로 인한 최저학력기준 도달에 대한 불안과 경쟁률 상승으로 인해 원서 접수 후 내 얼굴은 파리해졌다. 대학별 변경된 입시 전형과 대폭 확대된 무전공학과는 사상 최고의 눈치작전을 만들어 냈다. 실시간으로 무전공학과로 밀려드는 파도에 움찔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 몸을 움직였다. 베란다를 가득 차지하고 있던, 시든 줄기만이 식물이라는 정체정을 보여주는 화분 여러 개를 정리했다. 화분이 머물던 자리라는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바닥을 빡빡 닦고 창틀도 닦고 몇 시간 동안 집안 구석구석에켜켜이 쌓인 먼지를 물을묻힌 스펀지로 닦아냈다. 시커먼 스펀지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희열과 통쾌함이라니. 우리 집에 이렇게 먼지가 많았다는 불쾌감과 동시에 마침내 닦아서 없앴다는 통쾌함이 공존했다. 잡념을 잠시 날리기엔 청소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그래도 추석은 우리 가족끼리 조촐하게 치렀다. 네 가족이 모여서 먹는 밥과 수다는 한층 더 달큼하고 배부르다. 아이들에게 성인이 되면 전을 부치지 말고 동해로 서해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산도 보고 바다도 보며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행복을 즐기자고. 차례 상 준비 때문에 함께 있는 순간의 행복을 잃어버리지 말자고 했다.
식구란 같은 집에서 끼니를 먹는 사람이듯 식구라면 같이 밥을 먹을 때 더 행복하고 돈독해진다. 요란하면서도 조용했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부모님을 찾아뵙고 밥 한 끼 같이 먹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식사는 챙겨주고 사주면서 내 가족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식이다.
9월에도 자연에게 느끼는 행복을 빼놓을 수 없었다. 산을 오르고 길을 걸으면서 눈에 보이고 코에 맡아지고 귀와 피부에 스치는 모든 해와 바람과 나무가 싱그러웠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그 자연 앞에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따스했다.
가을이 어디 있는지 찾으러 다니느라 바빴지만 귀한 가을님을 잠시나마 영접할 때마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