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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Sep 16. 2023

우리 동네 독립 서점에 반하다.

마음가는대로 행복하게 삽시다.

내가 가는 산책로에는 독립 서점이 있다. 무인서점이다. 적요한 책방에 책방지기의 정성스러운 책 소개 메모와 함께 선별된 책이 진열되어 있다. 4인용 식탁과 작은 의자들이 놓여 있으며 결정적으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에어컨이 설치된 4평 남짓한 작은 책방이다.


 평소 1시간 코스의 호수공원을 걷곤 하지만 왠지 몸이 께느른할 때 가로로 길게 난 공원길을 따라 정발산 주택가를 구경하고 오곤 했다. 그러다 숨겨진 맛집이나 찾아볼까 하는 마음에 작은 골목 여기저기를 탐험하다 독립서점을 발견했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화장을 한 대형서점과는 다르게 수수한 민낯처럼 책방지기의 곡진한 책 소개가 전부인 작은 책방에 그야말로 매료되었다.


 어느 날은 산책이 목적이 아니라 책방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했다. 한 날은 설레는 마음에 찾아간 책방에 연인으로 보이는 20대가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차마 들어갈 용기가 없어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그래도 일단 산책을 나서면 책방부터 들렀고 책방에 아무도 없는 날이면 혼자 책방지기의 메모를 보며 책을 후루룩 넘겨보기도 하고 방명록에 글을 남겨보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될까?' 매번 그냥 읽고만 가기 미안한 마음에 반가운 신간 한 권을 사서 가져온 적이 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역시 책은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읽어야 더 맛있게 속도감 있게 읽힌다. 사서 집에 들고 온 책은 한참 동안 집안 여기저기에서 굴러다녔다. 다행히 완독은 했지만 시간이 꽤 걸렸다. 서점에서 매료되어 읽은 책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읽게 된다. 다 읽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 더 몰입하게 되나 보다. 그렇게 단숨에 읽은 책이' 최재천의 공부'였다.


 나중에 내가 자영업을 하게 된다면 뭘 하고 싶을까 생각하면 현재까지는 독립서점이 제일 유력하다. 지극히 현실적인 남편은 또 돈 안 되는 것에만 관심을 보인다고 핀잔을 줄 게 뻔하다. 독서, 영어공부, 그림 그리기, 책방지기,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돈 되는 건 하나도 없다. 부동산 임장 가기나 재테크 모임대신 어디 북클럽 할 데나 없나 기웃거리고 독립서점을 발견하면 딸에게 '엄마의 힐링 장소'를 찾았다며 문자나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올봄에 남편이 나에게 휴직하고 있을 때 '경매 학원'을 다녀 보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본인은 해외 출장 때문에 계속 다니기가 힘드니 똑똑한 당신이 경매 공부를 해서 알려주면 딱 좋을 것 같다며 적절한 당근성 멘트도 보태서 몇 번을 권유했다. 나도 이제 돈 되는 공부 좀 해볼까 잠깐동안 고민해 봤다. 숫자와 법에 약한 내가 두 가지를 결합한 영역에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냥 나답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할 것 같다.


 5월쯤 독립서점 방명록에 독서모임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다고 적어 놓고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얼마 전에 책방지기가 방명록 글 하나하나에 답글을 달아놓은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내가 쓴 글을 찾아보았다. 독서모임이 있으니 언제든 환영한다는 메모와 함께 전화번호가 적혀있었다. 책방지기에게 설레며 문자를 보냈고 책방지기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다음 주 독서모임에 합류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이 '엄마가 좋아하는 거 하게 됐네' 하며 더 기뻐해준다.


 돈과는 거리가 멀어도 독립 서점을 발견하고 독서 모임에 설레어하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그냥 행복할 것 같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복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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