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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Sep 25. 2023

태어나면서부터 천국(사후세계)을 경험하게 해 준 아들

엄마가 된다는 건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엄마가 너 낳다가 죽을 뻔한 거 알지?"

아들에게 가끔 농담으로 하는 말이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 아들을 낳고서 천국문 앞까지 갔다 왔으니 허투루 한 말은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19년 전 벚꽃이 막 지고난 아련한 봄날, 남편과 친정에서 늦은 아침을 대충 먹고 40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관장을 하고 침대에 누워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다. 그 당시에는 무통 분만이 막 성행하기 시작할 때였는데 고통 없이 아이를 낳는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무통분만을 선택했다. 척추에 주사를 맞기 위해 배속에 있는 아기처럼 무릎을 끌어안으며 등을 동그랗게 마는 순간 뼛속으로 주사 바늘이 날카롭게 들어왔다. 싸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면서 나른해졌다. 주사를 맞고 나니 이렇게 수월하게 아기를 낳아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고요했다. 그러다 주사를 맞은 지 2-3시간이 지나자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진통이 서서히 시작됐으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 갑자기 나타난 고통에 당황스러워 어떻게 힘을 줘야 하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의사 선생님이 무통 주사를 한 번 더 주셨다. 그렇게 무사히 아들을 낳게 되었고 수술 후 처치가 모두 끝나자 병실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병실로 가기 위해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휠체어에 타려고 하는 순간...


.... 어찌 된 일인지 내 몸은 하늘을 날며 강을 건너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강아래를 내려다보니 무릉도원 아니면 천국, 지상낙원 그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강가에는 사슴, 학 또 이름 모를 아름다운 동물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절벽 사이에 있는 작은 폭포에서 폭포수가 떨어지는데 그 풍광이 어찌나 멋있는지 넋을 놓게 만들었다. 푸르고 맑은 강물은 잔잔했고 계곡물소리와 새소리가 적당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귀를 간질였다. 진한 초록색 나무들은 무성하게 자라서 동물들에게 적당한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고 알록달록한 꽃들이 초록색과 대비를 이루며 멋진 그림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니 감탄하며 강을 건너고 있는데 멀리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하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는데 숨이 넘어갈 듯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누가 이 평화를 깨는거야.'

생각하며 가만히 들어보니 남편이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소리였다. 목소리는 점점 커지면서 가까워졌고 고장 난 TV 전원이 나가듯 눈앞의 화면이 퍽 소리를 내며 까맣게 꺼져버렸다. 그리고 눈앞에는 남편이 보이고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괜찮냐고 묻고 있었다.


 남편 시점으로 말하자면 분만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을 때까지만 해도 내 얼굴이 괜찮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병실로 이동하기 위해 휠체어에 타자마자 얼굴이 하얗게 변하더니 고개를 툭 떨어뜨리며 정신을 잃었다고 다. 간호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가 탄 휠체어를 끌고 그대로 나가려고 했고 이에 깜짝 놀란 남편이 간호사를 막아섰다. 남편은 곧바로 나를 다시 침대에 눕히고는 나를 흔들며 내 이름을 불러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깨어났다고 한다.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고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아찔해서 숨이 막힐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고 극도의 두려움과 긴장감을 느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래 허약한 몸인 데다 공복 상태에서 유도분만주사와 무통주사를 두 번이나 맞았으니 몸에 무리가 왔을게 분명하다. 그 상태에서 충분한 휴식 없이 몸을 일으키면서 혈액이 뇌로 전달되지 않아 순간적인 쇼크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 아닐까 내멋대로 추측해 본다.


 아무튼 남편은 이 이야기만 나오면 본인이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며 생색을 내곤 한다. 어쨌든 강을 건너던 나를 데리고 와줬으니 생명의 은인이 맞는 걸로 알고 평생 잘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늘 잊고 산다.^^ 


 아들은 곧 다가올 입대날짜를 의논하고 있을 만큼 장성했다 . 태어나면서부터 아찔한 천국을 경험하게 했던 아들. 아들 덕분에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고 더 깊이 철들어가고 있다.

  

 아들의 사춘기 시절 가끔은 언쟁이 있어 서로에게 서름서름하기도 했지만 시간의 갈피짬에 서로에게 스며들어 이제는 내가 아들에게서 아들이 나에게서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우리 많이 닮았네.' 하며 그마저도 닮은 눈웃음을 나눈다.


 아들을 키워낸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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