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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낀 세상의 온도

친절의 부메랑

by 리인

대학을 졸업하던 다음 해, 서울에 대한 막연한 동경으로 가득 찬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옷가지를 챙겨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공식적인 서울 체류 목적은 '서울말' 어학연수! 경기도 발령을 앞두고 세련된 서울말을 배우러 간다며 우스갯소리를 날렸지만 진짜 목적은 서울 구경이었다.


미아에서 직장을 다니던 고등학교 동창은 기꺼이 숙소 한 칸을 내어주었다. 친구가 출근을 하고 나면 홀로 서울의 명소를 찾아다녔다. 어느 겨울밤, 명동에서 돌아오는 길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복도 준비하고 두꺼운 코트도 가져왔건만 눈구경조차 힘든 남쪽 나라 출신의 나는 매서운 칼바람에 놀라 택시를 잡아탔다. 하필 퇴근시간이었다. 택시는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움직였다. 기어가는 택시 안에서도 미터기 속 숫자와 말은 빨리 달렸다. 3000원. 4500원...

택시 요금은 순식간에 내가 손에 쥐고 있던 돈을 넘어섰다. 아직 친구집까지는 멀었는데 낭패다. 속으로 작은 한숨을 쉬며 기사님께 말했다.


" 저... 죄송한데요. 기사님, 그냥 여기에서 내려주세요."

"왜요?"

"돈이 4500원 밖에 없어서요."
"그래도 어떻게 그러나. 그냥 목적지까지 태워줄게요."

"감사합니다."


서울에는 사기꾼이 많다고,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조심하라고 했는데 고향에서도 못 만난 마음씨 좋은 기사님을 만나다니 말도 못 하게 고마웠다. 매서운 칼바람과 대비되어 기사님의 마음이 더 따뜻하게 각인되었다.


그날 기사님은 공부를 갓 끝내고 세상이 어떤 곳인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스물네 살 젊은이에게 세상은 참 따뜻하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따뜻함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걸로 보아 내가 느끼는 세상의 온도는 그날부터 올라가기 시작했으리라.

언제 다시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선한 마음을 내어준다는 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대가 없이 친절을 베푼다는 건 그의 삶을 존중하고 환대하는 일이다.


그 후로 경기도에 올라와 결혼전까지 5년을 혼자 살았지만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별로 없다. 내게 이곳 사람들은 상냥하고 친절하고 따뜻한 교양인처럼 느껴졌다. 여간해서 화도 잘 내지 않고 말투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그 부드러움이 좋아서 서울말을 그렇게 배우고 싶었나 보다. 내가 그런 모습만 보는 것인지 그런 모습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처음 서울에 올라와서 가졌던 따뜻한 기억이 혼자 지내는 내게 '안심해. 여긴 안전하고 따뜻한 곳이야.' 라며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기분이었다. 그때 기사님의 얼굴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지만 푸근한 미소를 가진 분일 거라고 혼자 그려본다.


이제 내가 그때의 기사님과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


내 차례다.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따뜻함을 나눠주는 어른이 될 차례. 기사님을 만나서 갚을 수 없으니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풀고 그 친절이 돌고 돌아 다시 기사님께 돌아가길 바라본다. 친절의 부메랑처럼.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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