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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Dec 12. 2023

웰다잉, 잘 죽는다는 것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웰다잉, 잘 사는 것만큼 잘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동네 근처에 여름에는 맛난 팥빙수를 팔고 겨울에는 바삭한 붕어빵을 맛있게 파는 조그만 카페가 있다. 얼마 전 카페를 찾으니 옆에 있던 어린이집이 사라지고 요양병원 간판이 크게 붙어있다. 알록달록했던 페인트 색깔은 점잖은 미색으로 둔갑했다.


 어느새부턴가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수 버튼을 누를 때면 탑 층 버튼에 적힌 요양병원 글자가 자주 눈에 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을 운전해서 지날 때도 요양병원이나 요양원 간판이 걸린 건물이 솟아있다. 우리나라에 요양병원 수는 1400여 개, 요양원 수는 5800여 개. 어린이집이 요양병원으로 변해가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늙어가는 사회의 한복판에 중년의 나이로 서있다. 연로해 가는 부모님에 대한 책임감도 있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은 노파심에 나의 노년을 스케치하고 채색하게 된다.


 올해 초 엄마가 유방암 수술을 하셨다. 유방암 수술 전에도 엄마는 척추협착증과 당뇨를 오래 앓고 계셨다. 다행히 유방암 초기에 엄마 스스로 발견하셔서 수술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조기에 발견하고 수술한 덕분에 항암치료 없이 방사선 치료만 받으셨다. 하지만 5년 동안 여성호르몬 억제제를 복용해야 한다.


 약을 처음 복용한 날, 엄마는 부작용 때문에 심한 근육통과 두통으로 하루종일 침대신세를 졌다. 몸 약한 엄마가 5년 동안 고통과 함께 살아야 할까 봐 두려움으로 머릿속이 하얘졌다. 70대의 아픈 노모 앞에서 철없는 40대 딸은 눈물을 터뜨렸다. 환자 앞에선 밝은 모습으로 희망을 이야기해주어야 하는데 보호자로서 자격미달이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약을 조절해 주면서 통증이 많이 사라진 엄마는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달 북클럽 선정 책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를 읽으며 엄마의 투병과정을 지켜본 나의 심정과 그간 그려왔던 나의 노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90대 노모가 죽어가는 과정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담담히 그려놓은 책. '엄마 가지 마'가 아니라 '엄마 이제 편안히 가세요, 엄마 이제 아버지 곁에 가서 고통 없이 편안히 사세요.' 엄마를 보내는 애도일기가 담담히 담겨있다.


 거동도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엄마를 지키는 과정을 보며 인간의 존엄에 대해 묻게 된다. 살았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고 목숨은 붙어있지만 살았다고 말하기 힘든 상태에서 삶을 유지하는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세상에 태어나서 기저귀에 대소변을 보고 엄마가 주는 것만 먹을 수 있는 아기는 점차 자립해 혼자 인생을 꾸리는 어른이 된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 다시 기저귀를 차고 먹여주는 음식만 받아먹는 아기의 상태로 돌아간다. 아기로 태어나 어른이 되어 살아가다 다시 아기가 되어 생을 마친다.


 내가 마주할 부모님의 마지막 모습보다 나의 존엄사가 간절해진다. 나는 아기가 되어버린 부모님을 보살피는 일을 감당할 수 있지만 내 존엄을 지키지 못하고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는 사실은 참 모질게 느껴진다. 내 용변 뒤처리를 남에게 맡긴다는 사실도 가혹한데 그걸 인지하지도 못하는, 방기 된 존엄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현실은 나를 움찔하게 만든다.


 그저 내 두 손으로 밥을 떠먹고 공원이든 화장실이든 내 두 다리로 훨훨 돌아다니다 자식들에게 힘이 되었던 몸뚱이가 짐이 되지 않은 채로 잘 떠났으면 좋겠다. 나의 존엄이 쓰레기처럼 나뒹군 채 누워서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 시어머니는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하셨다고 한다. 사전연명치료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향후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자신의 연명의료중단 등의 결정이나 호스피스 이용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이것을 작성하지 않은 경우에는 보호자가 연명치료를 결정해야 한다. 부모의 연명치료를 거부하겠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자식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식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미리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하고 시어머니도 그중 한 분이다. 현재 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사전연명치료의향서를 등록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 의향서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남편과 곧 등록을 하러 가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서는 백병원에서 등록을 받고 있다고 했다.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지만 나의 존엄을 지키며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돈이 많으나 적으나, 잘났거나 못났거나 다시 아기가 되어 침대에 누워 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할 텐데 나이가 들수록 더 가지려고 애쓰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저 가진 것을 나누고 잘 정리하는 삶을 살아가야지. 그것이 웰다잉에 앞서 아름답게 나이 드는 것, 웰 에이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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