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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업 Feb 04. 2024

결전의 날, 그리고 완주의 가치

나의 일상이 회복되고 시험날까지는 다행히 그렇다 할 문제는 없었다.

정해진 루틴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언제 또 이렇게 공부에 미쳐있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부에만 매진했다.


이번 시험은 나에게 마지막이어야만 한다.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때의 계획도 그랬고, 여러 가지 경제적, 심리적인 요소들을 고려해도 반드시 이번에 끝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불합격 이후의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그만큼 이번에 끝내야겠다는 다짐이 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걱정하고 있었던 단 한 가지

"지금의 내 실력이 합격할 정도의 실력인가?"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그래도 작년에 시험장에 가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시험장에 간다는 설렘 같은 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최고의 컨디션으로 시험을 잘 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셔야 머리가 돌아가는 타입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캔이나 보틀 커피가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카페에서 샷으로 내린 아메리카노만이 내 머리를 돌아가게 만든다.

그래서 시험 전날 집 앞의 카페가 문 닫기 전, 내일 아침에 마실 용도로 아메리카노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갈 때 커피를 들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여유롭게 시험장에 도착해 커피를 마시면서 그동안 내가 취약했던 부분들을 정리해 놓은 나만의 핸드북으로 마지막 점검을 했다.

시험 전날 내가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이러한 컨디션이면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기다렸던 시험지를 받았다.

감독관은 혹시 시험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한 장씩 넘겨보면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이 순간은 정말 중요하다.

내가 버릴 문제들은 버리고 빨리 풀 수 있는 문제들을 선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주 모의고사 스터디를 하며 연습한 것처럼, 이번에도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려고 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기출문제들과는 다르게 내가 모르는 수식이 왜 이렇게 많지?'

원래 시험 특성상 수식이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에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을 수식으로 표현한 문제들이 많았다.

여유 있는 상태에서 문제를 자세히 살펴보면 분명 아는 내용일 것이라는 생각까지는 들었지만, 당장 이 문제를 내가 풀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들지 않았다.

결국 어떤 문제부터 풀어야 할지를 제대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시험지 확인 시간을 날리고 말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1번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본 수식에 대한 당혹감과 시험장에서의 긴장감 때문에, 평소보다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최대한 모르는 것들은 빨리 넘기고 내가 확실하게 풀 수 있는 문제들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시험시간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이 되었고, 나는 마지막으로 내가 푼 문제들을 점검했다.

분명 내용은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난해한 수식에 가려져서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들이 꽤나 보였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을 몇 개 날린 것이다.


물론 누구나 시험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길 원하지만, 사람은 결정적이고 긴장되는 순간에 조금씩은 실수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이번 시험만큼은 나쁘지 않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빈칸으로 둔 것들이 많은 것 같아 불안했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내 실력이 많이 올라갔음을 느꼈다.

절반 이상의 문제는 확실하게 풀어냈고, 나머지 절반 중에서도 확실하진 않지만 고민 끝에 답안을 써 내려간 문제들이 많았다.

당연히 아쉬움과 불안함은 남았지만, 정말 운이 좋으면 이번에는 합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시험을 보기까지 이별과 퇴사, 그리고 2년 간의 공부와 나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 왔던 나 자신이 대견했다.



첫 시험때와 똑같이 나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본가로 내려갔다.

작년에는 시험이 끝난 후 공허함에 시달렸었지만, 지금만큼은 홀가분하게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부모님과 맛있는 것도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그동안 공부하느라 못 봤던 친구들도 많이 만났다.


시험 이후의 계획은 없었고, 당분간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시험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운 좋게 합격하면 면접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고, 떨어지면 그때 가서 다른 대안을 선택하는 것이다.


대신 지난 2년 간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퇴사하고 공부하기로 한 결정은 옳았을까

다른 기관들은 제쳐두고 한국은행을 준비하기로 한 결정은 옳았을까

2년 간 나는 후회 없이 공부에 매진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에 대해...


이러한 물음들에 완벽하게 '옳다', '아니다'라고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유지하며 끝까지 완주했다는 것이다.

지난 2년 간 수험생활을 하며 저마다의 이유로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물론 그 사람들 중 다른 대안을 선택해서 더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완주의 가치를 믿는다.

불안하고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결국 나는 결승선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 말이다.

이때 얻은 긍정적인 마인드는 공부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나에게 매우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나는 2년 간의 계획을 무사히 완주했고, 이대로 수험생활이 끝나길 소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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