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같은 방대함으로
나로 다시 시작한다.
나를 다시 음미한다.
나,
최근 어떠한 일을 마주하면서 참으로 많은 감정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알아주지 못하고 있단 것도.
나를 알아주고, 진짜 속마음을 들어주는 건, 나 자신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따뜻한 제스처를 누군가에게 베풀었을 때, 삶은 더 의미 있어진다고 믿는다.
나는 생각보다 우아하고, 차분하고, 이쁘다.
그리고 생각보다 머리가 잘 안 굴러갈 때가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생각보다 예술을 사랑했고, 사랑하며, 또 신에 대한 깊은 열망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두려움도 크고, 불안도 있고, 너무 순수해서 나약했다.
이제껏 배워온 모든 것들을 믿음으로 실현해 보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현실을 생각하며 더없이 절망으로 빨려가기도 한다.
불안은 가끔씩 나를 잠식시키지만 명상으로, 기도로, 가족의 웃음과 시답지 않은 농담들이
현실의 지금으로, 지금의 나로 다시 데려다준다.
내 가슴엔 하나 그려지는 그림이 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해 가는, 그 길에 있는 내가 있다.
그 길을 함께하는 사람도 보이고, 그리고 주변에 있을 사람들도 보인다.
그 모습을 가만히 음미하고 있으면, 가슴이 편안해지고, 설렘이 일어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왜 신이 나에게 이 인생을 살게 하는지,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그곳엔 더없이 큰 감사가 있다.
가슴이 감사로 차오른다.
나는 말을 따뜻하게 하려 한다.
인생에 친절함이 없다면, 난 이 세상에 더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비록 이 말과 함께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가 일어나지만,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라며 다시 생각해 보길 반복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잃고 싶지 않다는 나의 나약함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만약 그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내가 받은 상처보다 더 그에게 친절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이 삶에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건 내 상처가 소중하지 않다는 의미가 될 것인가, 아니면 터놓음으로써, 내가 사실 당신을 더 소중하게 생각했다는 고백이 될 것인가.
모든 상처는 사랑의 고백이다.
사실은 내가 사랑하고 있었다고, 진심을 숨기고 눈물로 고백하는 마음일 것이다.
신을 믿고 있었다고, 당신을 믿고 있었다고, 고백하고, 또 고백하는 것일 테다.
나를 음미하기엔 나란 존재는 꽤나 방대하다.
아마 계속해서 나를 음미하려면, 난 이 글을 계속해서 써야 할 것이다.
그래도 한 가지만 더 음미해 보자면,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순간에도,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나를 믿어주려고, 내가 알아 채지 못한 나를 알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그래서 울면서 나와 화해하고, 또 화해하고,
그렇게 나를 나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있다.
말했듯이, 난 나약하지만, 생각보다 강하고
생각보다 우아하고, 멋지고, 아름답기에
더 음미하고 싶다, 더 나를 음미해 달라고 나의 가슴이 이야기한다.
2026년의 첫날, 오늘이 내게 의미가 있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글 때문일 것이다.
나를 더 아는 시간, 나를 더 알게 해 준 오늘 이 시간 때문이다.
어떤 한 해가 될까, 한치 앞도 모르는게 인생이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분명 이전에 나와는 다를 것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매일 조금씩 나를 믿어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슴속 내 조그만 용기를 음미하며,
오늘 밤 불을 끄고 조용히 나를 더 안아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