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엔 작은 꼬마 영웅이 있다.
비록 이곳저곳 찔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한테까지 채찍질을 맞아가며 견뎌왔기에 온몸은 상처투성이지만,
끝끝내 나는 살아 있다고, 내게 올라오는 이 끔찍함들을 용감히 흘려보내겠다고, 무릎을 일으켜 망토를 흩날리는 전사가 있다.
이 전사는 모두가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먼지 구덩이 속 전장에서 살아남아, 아직 끝나지 않다고 읊조린다.
두고 보라고, 그 보물상자를 쥘 사람은 바로 나라고.
천성이 평화주의자 성향이 강한 애니어그램 9번인 나는, 관계가 소중한 사람이었고 부작용으로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았다.
혹시 나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걸까 봐, 사람들의 관계에서 어린 나는 두려웠고, 외로웠다.
어른이 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 버릇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은 내 인생에 가장 큰 덫이 되었다.
마냥 순수한 놀이터라 생각했던 인생에서, 맞고 뚜들기고 바닥 끝까지 무너져보니,
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나는 이번 생에 참 많은 걸 선택해서 왔구나.
에고의 탈을 벗기 위해, 참으로 많은 걸 선택해서 왔구나.
이런 선택을 하고 온 내 영혼에게 존경심이 들기까지 한다.
얼마나 용감한 영혼이길래, 카르마를 다 풀려고 왔어 그래~ ㅎㅎ
이런 농담까지 스스럼없이 하게 된다.
용감하다.
난 나를 그렇게 부르고 싶다.
오늘 난 옥죄어오는 내 책임과 역할, 부담감들을 '멋진 커리어 우먼'으로 다 빠개버리겠다는 용기를 찾아냈다.
용기는 동굴 같은 가슴 속에 아주 작게 피워낸 촛불 같다.
혹여나 꺼질까 손으로 가리며 조심히 장작더미에 불을 옮기면
활활 타오르는 불로 내 동굴을 밝히고, 숨어있던, 내 슬픔들을 몰아낸다.
슬픔의 얼굴들이 빠져나가면
그 자리엔 선선한 바람이 불고
봄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아직 동굴 밖은 새하얀 눈으로 가득하고
날은 여전히 춥지만
내 동굴은 이내 따뜻해지고
가슴속 용기가 그렇게 이 공간을 밝혀준다.
얼마나 고마운가
날 다시 살게 하고, 세상으로 나가게 하고, 사람들을 만나 웃게 하고, 일상을 살게 하는 이 용기가.
다시 일을 하게 하고, 다시 나를 믿어주라고 얘기하는 이 용기가.
머지않았다고, 넌 반드시 행복해질 거라고 말해주는 이 용기가.
너 자신으로 당당해지라고 말해주는 이 용기가.
얼마나 고마운지.
내 가슴에 영웅이 산다.
조그맣던 영웅은 추운 겨울을 버티고 어느새 눈이 녹은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온다.
전장의 상처는 아직 몸에 흔적처럼 남아있지만
다시 내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수 있기에
이 긴 겨울을 버텨준 자신에게 고마울 것이다.
아직 망토는 내 몸에 둘러져있다.
루비가 가득 든 보물 상자는 분명 아직 어딘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조금 몸집도 커졌고, 맵집도 커졌다.
더 날카로운 칼을 구하고, 더 튼튼한 옷을 입고, 전사는 다시 모험을 떠난다.
살아낸 용기로,
누구보다 용감한 나로.
그렇게 날 믿으며 당당히 풀을 입에 물고, 룰루랄라 마저 길을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