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세상 모든 것을 음미할 수 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음미의 대상이다.
내 침대에 걸쳐있는 사슴인형의 귀여운 뒷모습부터 아침부터 흘러나오는 음악, 고민의 시간들, 어제의 만남, 복잡한 감정,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깔, 아침의 기온, 희망, 그 모든 것들이 그리고 신까지도.
날 괴롭히는 것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데,
그냥 그 막막함을 음미하면, 그 순간 '의미'가 부여되지 않는 하나의 대상으로 내게 떨어져 나오고
그냥 그 자체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때, 아 이게 혹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말한, 세도나 메서드의 놓아버림, 릴리징인 건가?라고 생각한다.
음미하면 현재에 있게 된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그 감정만 오로지 음미한다.
그리고 이런 나를 멋지다라고 생각한다.
내 궁으로 다시 돌아와 주권을 회복한 고국의 왕처럼 다시 나를 되찾는다.
현재에 있다는 해방감, 정말로 날 구원해 줄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이라는 것을 음미를 통해 알아간다.
그리고 이제 날 살리는 음미에서, 점차 나의 아름다움을 구원하는 음미의 형태로 나아간다.
가슴에 무거움을 그대로 음미하면 커다란 돌덩이 같은 기체가 느껴진다.
그냥 눈을 감고 그 기체를 가만히 느끼면 정수리부터 진동이 일어나고, 가슴에 감정들이 올라온다.
'음 그렇구나, 이런 감정들이었구나' 받아들이고 등 뒤로 떠나보내준다.
그렇게 기체들이 줄어들면 조금씩 가벼워지고, 감은 눈의 시야가 밝아진다.
명상 수행 중 정화행법과 많이 유사하다.
그래도 제일 좋은 음미는 '좋아하는 것을 음미'하는 것이다.
'멕시코를 여행하는 상상' 이라던가, 이탈리아 남부를 내달린다던가,
걱정 틈사이에 있는 희망과 변곡점이라던가,
나의 강아지의 귀여운 형태라던가,
기분 좋은 주말 아침의 느낌이라던가,
음미는 현재에 있게 하고, 가벼워지게 하고, 꿈을 꾸게 한다.
음미는 순간을 사랑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화려함도 순박함도 모두 신의 표현이고
그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것은 신을 음미하는 것이 아닐까
이 우주의 방대함에 너무 음미할 것이 많아 참으로 지루 할 틈 없는 세상이다.
모든 것을 음미하는 음미자로서
난 나의 왕국을 되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