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오늘 조금 쑥스러운 글을 쓸 것 같다.
얼마 전에 엄마에게 모자를 사주었다.
엄마는 모자를 좋아한다. 특히 추운 겨울에 머리를 보호해야 하는데, 평소에 쓰고 다니는 모자가 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온다고 튼튼한 패딩 모자를 사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돈도 버니, 엄마를 데리고 큰 몰에 가서 요즘 유명하다는 브랜드의 털이 북실거리는 겨울 모자를 사주었다.
엄마는 매우 맘에 들어했고, 평소 모자를 잘 쓰지 않는 나는, 엄마가 '그' 모자를 잘 쓰고 다니는지 틈틈이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눈이 가득 쌓인 아침이다 보니, 엄마에게 사준 털이 북실거리는 '그' 모자를 잠시 빌려 쓰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고 나가기 전 거울을 보았는데, 새삼 이상한 놀라움이 들었다.
'어? 왜 이렇게 잘 어울리지? ㅎㅎㅎㅎ'
거울에 나를 보고 놀란 건 이전에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 공연을 가기 위해 풀로 꾸미고 나갔을 때, 거울 속에 내가 너무 이뻐서 맘에 들어 사진을 몇 장씩 찍어 남겼던 그날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오,,,,,, 모자가 잘 어울렸구나.
특히 이런 벙거지가 잘 어울리는구나...
그렇게 새하야진 눈길을 밟으며 신이 난 강아지와 함께 자주 가는 공원을 향했다.
특유의 주말 아침의 햇빛이 찬란하게 비추고, 세상이 하얗게 반짝이고,
강아지는 신이 나서 계속 뛰어가자고 나를 보채고,
하얀 눈에 빛이 비쳐 더 눈이 부신 그 길을 걸으며, 뭔가 언젠가 되게 좋아했던 느낌을 살며시 기억했다.
가끔, 사람들에게 들었던 어떤 이미지.
하얀 눈으로 가득 덮여버린 공원에서 강아지와 걸으며
이 털이 북실거리는 모자를 쓴 나를 비추는 햇빛을 음미했다.
그냥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나무 위에 쌓인 눈이 바람에 의해 살며시 흩어지며 떨어지는 그 사이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모자를 쓴, 아름다운 나를 음미했다.
하얀 눈에 비춰 아름다운 나.
미인형도 아니고, 엄청 예쁘게 생기지도 않았지만,
보다 보면 괜찮은
그리고 생각보다 벙거지 모자가 꽤나 잘 어울리는 나.
이 털이 북실거리는 모자가 하얀 눈과 햇빛과 함께, 잊고 있던 날 기억하게 했다.
순수하게 아름다운 나를.
그래 난 겨울이 어울리는 아이야.
이렇게 하얀 눈이 어울리는,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
그렇게 강아지랑 신나게 하얀 눈 위를 뛰놀다가 집에 들어왔다.
강아지 발을 씻기고, 집에 창문을 다 열어 환기를 시작했다.
오래된, 어두운 기운들을 다 보내고,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햇빛과 차가운 바람이 집안을 가득 쓸어주었고, 그 바람을 타며 이불을 털고, 침대 정리를 했다.
모자를 쓴 채로 :)
깨끗해진 공기의 집안에서, 하얀 눈을 가슴에 묻으며 오랜만에 내게 와준 나를 기억했다.
털이 복실거려, 조금 민망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 오늘의 모자
그리고 조금 민망하지만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조금은 민망하지만, 기분 좋은 순간이다.
오늘 내게 온 기분 좋은 음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