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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산길 오르기

by 그린토마토

비가 왔다. 나는 남편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암자에 갈까? 안 간지 한 달 되었으니. 남편은 굳이 비오는데 가야하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길이 미끄럽지 않겠어?하고 물었고 나는 차로 가는건데 뭘, 하고 대꾸했다. 물론 운전은 남편이 하는 것이라 조금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비오는 날 산에 있는 암자를 갔다.


산중턱에 차를 대어놓고 암자로 걸어올라갔다. 암자는 절벽 아래 있었다. 차를 주차한 뒤 20분 정도 오르막을 올라가야만 했다. 아. 그런데 문제는 안개였다. 산 위로는 안개가 가득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남편이 앞서 걷고 나는 뒤에 따라갔다. 얼마 걷지 않아 숨도 찼다. 잠시 숨을 고르며 비오는 산을 둘러보았다. 가까이 있는 나무도 안개로 인해 희미했다. 투명우산에는 빗방울이 맺혔다. 작은 새들만이 나뭇가지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바람까지 불어 살짝 후회가 되었다. 춥고 비오는데 위험하게 왜 왔을까? 돌아갈까?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오자고 했기에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안개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을 뿐 끝은 어딘지 아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절벽 바로 아래 있는 암자는 꽤 이름이 알려졌다. 그래서그런지 내가 도착했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입구에 서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암자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산 위에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 평소같으면 산 아래 풍경과 먼산 너머 바다까지 보이지만 비가 오니 아무 것도 안 보였다.

법당을 들렀다가 다시 돌아나올 때 안개는 더 짙어졌다. 암자를 다니는 내내 안개가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안개가 내 곁으로 온건지, 아니면 내가 안개 안으로 들어가는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안개 낀 산길을 천천히 내려왔다. 안개가 길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산길을 내려오며 안개낀 산길을 오르고 내리는 일이 우리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에서 불쑥 어떤 일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고 앞날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묵묵히 가야만 한다. 길을 벗어나지 않기위해 조심하며. 가끔 위험하지 않을만큼 살짝 빠질 수도 있지만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다시 올라오는 건 혼자만의 몫이다. 곁에 잡을만한 단단한 나뭇가지라도 있다면 운이 좋은 것이다. 오르막 중간에 평지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잘 살펴야한다. 어딘가에서 돌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그 길의 끝에 가봐야만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른다. 각자 다른 것을 발견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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