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6학년 부장과 생활안전부장을 맡았다. 6학년 부장 안에는 졸업앨범, 수학여행, 진학, 졸업 등의 6학년 총괄업무가, 생활안전부장 안에는 학교폭력, 생활규정, 안전총괄, 대피훈련 등의 업무가 들어 있었다. 학교가 작고 올해 나는 처음 학교를 갔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 선택이었다.
그리고 학교폭력 면담은 생각보다 빠른 시기인 3월에 시작되었다. 지난 목요일, 우리반 6교시 수업은 결국 다른 선생님 수업으로 대체했고 나는 학교폭력 면담을 위해 교감실로 갔다. 손에는 학교폭력 사안처리 가이드북과 블루투스 키보드,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젊은 학부모 두 명은 아이가 당한 일에 대한 분노와 그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처참함에 대해 이야기 했고 나는 들으며 열심히 블루투스 키보드로 기록했다. 그리고 다시 교실로 올라와 또 열심히 기록을 하며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퇴근 시간 전에 피해관련 학생의 부모는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받은 자료를 정리했다. 다시 저녁 7시에는 직장일을 마치고 급히 달려오는 가해관련 학생 부모와 면담이 잡혔다. 그리고 그 면담은 저녁 8시 15분 경 마쳤다. 피해관련 학생의 학부모든 가해관련 학생의 학부모든 눈물을 쏟아내었다.
나는 학부모들이 면담을 오기 전에 그분들이 앉을 책상을 물티슈로 닦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 따뜻한 차를 권했다. 눈물을 쏟을 때는 말없이 티슈를 건넸다. 좋은 일로 인연이 된 건 아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고 사소한 정을 베풀고 싶었다. 그건 사람간의 예의라는 생각을 했다.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돌보는 학부모들.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학교폭력이라는 낯설고 거부감 드는 단어가 끼어들어 버렸다. 그 상황은 그들을 너무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나의 일은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메뉴얼을 안내하고 궁금한 건 대답해주는 것이었다. 진행되는 절차에 대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다. 나도 마음속으로는 혹시나 메뉴얼에 어긋난 안내가 없었는지 끊임없이 살폈다. 그 분들을 만나기 전에 교육청 관계자에게도 전화하며 여러가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들이 참 짠했다.
나의 삼십대가 보였고 정신없이 살던 그 때의 삶이 떠올랐다. 그들의 자녀와 비슷한 또래였던 내 아이 모습이 겹치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나는 면담을 마치며 생각했다. 아이들이 더 큰 상처를 받지 않고 잘 해결되길.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마음도 같이 들었다. 학부모들도 상처 받지 않고 이 시간을 잘 넘기길.
인생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버텨나가야 하는 거라고. 그 답을 찾아보자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