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이 주 안에 결론을 맺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 주 연기를 했고 그러고도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어제 토요일 면담에는 교육청 갈등조정위원까지 나왔다. 나도 토요일에 출근을 했다. 다행히 1시 전에는 면담이 마무리되어서 모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아직 피해자부모님이 심의위를 갈지 학교장 자체해결을 할지 결정하지 않았다. 결과는 월요일까지 기다려야한다.
나는 회의를 마친 뒤 교실이 있는 4층으로 올라갔다. 학년 연구실에서 컵라면 하나를 끓여먹은 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잠깐 숨을 돌렸다. 그러곤 교실에서 회의 관련된 서류작업을 했다. 내친김에 하지 않으면 월요일에 해야하는 일이었다. 얼른 마무리하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주말에 교실문을 두드릴 사람은 거의 드물기에 문 쪽을 유심히 살피며 나가보았다. 문 앞에는 당직실무원 선생님이 서 있었다. 당직실무원 선생님은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꼬박 학교를 지키는 분이다. 학교 앞 떡집에서 쑥떡을 사며 내 것을 하나 더 샀다고 했다. 점심도 거르고 일하는 것 같다며 한 팩을 건넸다. 나는 감사한 마음에 뭐라도 드려야할 것 같아 책상 위에 둔 박카스를 챙겨 드렸다. 당직 실무원 선생님은 중앙현관에서 외부 손님이 올 때마다 문을 열고 잠그는 일을 반복하던 나를 보았던 것이다.
컴퓨터 앞에 다시 앉으려다 말고 일회용 스티로폼 접시 안에 들어있는 쑥떡을 보았다. 먹음직스러워보였다. 쑥떡을 덮은 비닐랩을 살짝 걷었다. 콩고물이 묻은 쑥떡 여섯 개가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하나를 살짝 들어올렸다. 봄인데 아직 쑥떡을 못 먹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쑥떡을 못 먹고 봄이 지나갈 뻔 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콩고물이 묻은 쑥떡을 꺼내어 한 입 베어물었다. 엄마가 봄에 해주던 쑥떡이 생각났다. 그 때는 그것이 귀한 것인줄도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 봄에는 쑥떡이 생각난다. 쑥떡을 먹어야 봄을 맞이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쑥떡을 못 먹고 이번 봄을 넘기고 있었다.
쑥떡 하나를 입안에 야무지게 넣으며 교실 밖을 바라보았다. 벚꽃이 벌써 졌고 나뭇가지의 새순이 조금씩 더 짙어지고 있었다. 꽃이 피는 것도 지는 것도 모르고 봄꽃이 펴도 예쁜 줄도 모른 채 봄을 보내고 있었다.
쑥떡이 입에 맞았다. 하나 더 꺼냈다. 맛있네. 열어둔 교실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봄바람이 불어왔다. 창문 앞에 앉아 쑥떡을 먹으며 비로소 봄이 가까이 왔음을 느낀다. 쑥떡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