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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Apr 08. 2024

고도를 기다리며 연극을 본 뒤



  주인공 에스트라공(고고)과 블라디미르(디디)는 연극 내내 고도를 기다렸다. 1막에서 소년이 찾아와 고도는 내일 온다고 알려주었다. 2막에서도 또 소년은 다시 찾아왔고 고도는 다시 내일 올 거라고 말했다. 연극은 고고와 디디라는 두 주인공이 고도를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가 전부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우리 삶과 연결되는 것들을 발견한 뒤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느껴졌다. 이야기 속의 포조와 럭키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1막에서 럭키는 인정없고 무서운 주인 포조에게 끈으로 묶여 끌려다닌다. 그리고 절대 주인의 가방을 놓지 않았다. 럭키가 들고 있는 가방은 우리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인생의 무게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럭키의 모습이 어떤 대사보다 기억에 남았다. 그 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파트르크 쥐스킨트의 모습 같기도 했다. 2막에서 럭키는 장님이 되었고 포조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포조는 럭키에게 의지하며 길을 떠났다.


  연극을 보고 난 뒤 돌아오는 버스와 기차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오디오북을 다시 들었다. 그러곤 버스와 기차에서 마주치는 모든 이들의 고도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무엘 베케트는 자신도 고도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안다면 희곡에 썼을 거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만의 고도를 생각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고도가 무엇이든간에 우리 각자에게는 인생에서 기다리고 희망하는 고도가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 삶은 살만하다는 것, 꼭 끝까지 살아서 각자 꿈꿨던 고도를 만나보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해 보았다.  



팔십이 훌쩍 넘은 원로배우 신구와 박근형, 박정자 그리고 원로는 아니지만 환갑에 접어든 배우 김학철. 나이듦과 가능성에 대해 비전을 제시해준 소중한 연극이었다. 그들보다 훨씬 나이 어린 관객들은 연극이 끝난 뒤 노배우들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노배우들은 '늙어감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마라'는 따뜻한 시선과 메시지를 전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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