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를 가게 된 영화촌놈.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변명 같지만 직장에 육아에 시댁친정일만으로도 지치는 전형적인 내향인이기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어쩌다가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나는 올해 직장을 쉬게 된 덕분에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곳에 쓸 에너지가 생겼다.
지인들과 같이 찾아간 영화의 전당은 평일이어서 여유로웠다. 우리는 주차한 기둥에 있는 숫자사진을 찍으며 사진 안 찍으면 주차자리 기억을 못 한다는 농담도 던졌다.
주차장을 벗어나 지상으로 올라갔을 때 사람들이 조금씩 붐비고 있었다. 부산에만 있다는 모모스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사진 몇 장을 같이 찍으며 소녀처럼 까르르 웃었다. 레드카펫, 유명인들의 핸드프린팅 앞에서 폼을 잡아보기도했다.
낯선 인도영화인데도 영화상영관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이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신디야 수리라는 인도감독의 인사말로 시작하는 영화. 감독은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했고 주로 다큐영화를 많이 찍었다고 했다. 영화를 위한 자료조사도 꽤 오랫동안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영화를 보는 마음가짐이 좀 더 진지해졌다.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에 초청도 되었다고 하니 왠지 더 기대가 되었다.
영화 소개에는 젊은 초짜 순경이 베테랑 여자 간부를 만나 진짜 순경이 되어간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 반전이 있었다. 물론, 베테랑 여자 간부도 나름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녀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되었다. 내 나이가 영화 속 주인공 산토쉬순경보다 베테랑 여자 간부에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도 저 자리에 있다면 하는 고민을 아주 잠깐 하기도 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폭력에 대해 불편했다. 영화 속 남자아이를 취조하는 장면이 반복될 때 눈을 질끈 감았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인도사회의 부조리를 조금씩 건드리고 있었고 결국 여주인공은 그런 부조리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맞섰다. 그리고 또 다른 대안을 찾아 떠났다. 타협하지도 순종하지도 머무르지도 않은 채 자신의 답을 찾는 것. 나는 영화의 결말이 명확하지 않아서 좋았다.
우리는 영화를 본 뒤 바다가 보이는 어느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지인들과 영화 내용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 나눴다. 다들 폭력성과 부조리함에 분노하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결말에 대한 해석은 각자 제각각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늘은 조금 흐렸고 비가 조금씩 내렸다가 멈추었다가 하는 날이었고 커피는 달콤했다.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영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