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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토마토 Apr 07. 2024

무덤 나들이

  아침 일곱시, 둘째아들과 남편, 나 이렇게 세 명은 집을 나섰다. 우리가 가야할 곳은 시댁이었고 가는 길에 들르고 싶은 곳은 벚꽃길이었다. 길이 막히기 전에 벚꽃나무를 보고 싶은 욕심에 아침 일찍 집을 나왔던 것이다. 벚꽃나무는 길의 끝이 안 보이게 줄을 지어 있었다. 때를 만난 벚꽃은 나무 사이사이 빈틈없이 피어 있었다. 게다가 바람이 불면 흩날리기까지 해서 봄의 낭만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가는 중에 나는 문득 시댁에서 십분 거리에 있는 시할머니 무덤이 생각났다. 십년 정도 차이를 두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덤은 양지바른 곳에 나란히 있었다. 시할아버지는 시할머니보다 십년 정도 일찍 돌아가셔서 한번도 뵌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시할머니는 가끔씩 뵙고 인사드려 좀더 친근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할머니 무덤에 술 한 잔 올릴까?' 남편도 좋다고 했기에 슈퍼에 들러 소주 한 병, 황태포.일회용 컵, 접시, 나무젓가락을 샀다. 그러곤 할머니 무덤으로 걸어올라갔다. 잠시 지나친 시골집들마다 튤립들이 소담스럽게 심어져 있었고 밭과 논은 일구어져 있었다. 길에는 민들레와 들풀들이 피어있었고 작은 풀벌레들과 초록색 개구리가 뛰어다니기도 했다.



  소주잔에 술을 따르고 황태포의 비닐을 벗겨 접시에 올렸다. 그러곤 나란히 서서 절을 했다. 아주 잠깐, 할아버지와 할머니 무덤 중에 어디에 잔디가 더 많은지, 무덤가에 죽은 나무는 어떤 것인지, 무덤가에 떨어진 동물 똥은 토끼통인지를 이야기했다. 남편과 아들을 세워두고 무덤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미소를 머금은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아주 예전 인도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바라나시 강변, 화장터, 시체가 타고 있는 화장터 앞에서 가족사진을 웃으며 찍던 모습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했던 그들의 미소가 문득 떠올랐고 그 미소를 지금 우리도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잊고 살 수 없을 것 같던 그리움도 어느덧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잊혀졌다. 그러다가 문득 바람소리에, 작은 풀꽃이 피어있는 모습에, 오랜 친구 같은 햇살에 문득 떠올랐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이 숙명인 듯, 나 또한 나보다 앞선 분들처럼 그저 묵묵히 삶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 그 길의 끝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 뿌리를 맞대고 피어있는 세 송이의 민들레가 꼭 우리 모습 같아 웃음이 났다. 이 민들레처럼 좀 다정하게 살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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