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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불청객 고양이 고등어와 인사하다

by 그린토마토

그저 방석이 있어 누웠을 뿐이고 물이 있어 마셨을 뿐이고 사료가 있어서 먹었을 뿐인데 날 왜 쳐다보냐?

그 녀석의 눈빛은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베란다문을 열건말건 그건 알 바가 아니라는 듯. 요즘 애들말로 '내 알 바야' 하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를 한번 쓱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눕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베란다문을 열어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여유롭게 물을 마시고 사료를 먹는 녀석. 정체가 뭐냐? 이름은 고등어로 정했다.

고등어는 덩치가 커서 나비나 치즈가 상대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연륜이 묻어나는 포스가 느껴졌다.


결국 심술부리던 나비도 온데간데 없고 치즈도 츄츄도 안 보였다. 고등어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앞베란다는 고요했다.


고등어가 한 며칠 머무르고 반나절 정도 보이지 않았다. 또 그 틈에 이리저리 치여 살아가는 치즈가 잠시 방문했다. 그리고 열린 베란다 사이로 잠시 냄새를 맡다가 사라졌다.

우유가 사라진 뒤, 치즈도 츄츄도 자주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나비가 심술을 부린 까닭도 있지만 치즈와 츄츄 모두에게 우유를 잃은 쓸쓸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오랜만에 비가 오자 방석도 흠뻑 젖어버렸다. 젖은 방석을 피해 앉아있는 치즈가 안쓰러웠다. 날이 개면 방석부터 씻어 말려야겠다.

길고양이의 삶이란 늘 예측할 수 없구나. 함께 하던 친구도 자녀도 언제든 예고없이 떠나기도 하고 비가 오면 젖은 곳에 앉는 것이 일상이고 나보다 강한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했다.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는 야생의 삶. 앞베란다에는 그 야생을 숙명으로 받아들인 고양이들이 지나다니고 아주 잠시 쉬어갔다.


살아있음이 기적인 고양이들에게 오늘도 사료 몇 알과 깨끗한 물 한 그릇을 떠주며 그들의 삶을 응원했다. 어떡해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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