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의 창시자 이제마 세상을 뜨다
1837년 함경도 함흥에서 서자(庶子)로 출생하였다.그의 가문은 조선 건국 이전의 추존왕인 목조대왕의 둘째아들인 안원대군(安原大君)의 후손인 왕족 집안이다. 이수광가에 따르면, 이제마의 모친은 지적 장애인이라 비장애인인 부친과 결혼을 늦게 한데다가 첩으로 시집을 갔는데, 할아버지가 꿈에서 말이 날뛰는 모습을 보고 이제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주역》을 애독하였다. 13세 때인 1850년 향시(鄕試)에서 장원한 후 전국 각지와 러시아, 만주 등지를 다니며 견문을 넓혔다고 알려졌다. 36세 때였던 1872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등용되었고, 50세 때였던 1886년에 진해현감(鎭海縣監)이 되었으나 다음 해인 1887년에 사직했으며 60세 때였던 1897년에 최문환(崔文煥)의 반란을 평정하여 고원군수(高原郡守)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인 1898년에 사직하였다.
그의 저서 《동의수세보원》을 통해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네 가지 체질이 있다고 하는 사상의학을 제창하였다.
《동의수세보원》 외에도 《천유초(闡幽抄)》, 《제중신편(濟衆新編)》, 《광제설(廣濟說)》, 《격치고(格致藁)》 등을 저술하였다.
1900년 11월 12일 64세로 죽을 때까지 고향에서 보원국(保元局)이라는 한의국을 개설하여 환자들을 보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