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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오늘사건] 1930년 1월 24일

청산리의 영웅 김좌진, 암살당하다

by 나그네

1920년 청산리 대첩으로 명성을 울린 김좌진 장군은 1928년 한국유일독립당을 조직하였고 1929년 한족총연합회 주석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계열과 공산주의계열 독립운동가 사이에 갈등이 격화되었고, 공산주의 선동에 방해되는 이유로 1930년 1월 24일 김일성(金一星, 본명 김봉환)의 사주를 받은 고려공산청년회 회원 박상실(朴尙實, 일명 : 尙範, 金信俊)에게 피살되었다. 김일성은 사건 직후 이붕해(李鵬海, 1899~1950)에게 살해되었으며, 박기봉(朴奇峰)에 의하면 만주공산주의 단체의 기관지인 「적기(赤旗)」지(誌) 1930년 3월호에 암살 교사범 김일성(金一星·김봉환)의 죽음을 추도하는 기사가 실렸다고 한다.


한편 중외일보 1930년 2월 24일자 기사 「배후(背後)에서 권총(拳銃)으로 김좌진(金佐鎭)에 하수(下手)한 김일성(金一星)」에 나오는 김일성은 단순한 성행 불량자로 김봉환과 다른 인물로 보이며, 그가 단독으로 암살을 실행한 것으로 나온다.

또 암살범 박상실(朴尙實, 일명 崔永錫)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집행을 위해 봉천으로 이송 중이라는 1931년 9월 11일자 동아일보 기사가 있으므로, 그도 무사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 중국 연변의 학계에서는 김좌진 암살범은 『조선공산당 아성(阿城)총국에서 파견한 무장공작대원 공도진(公道珍)』이라고 말한다. 공도진(公道珍)은 이복림(李福林,1907 ~1937)의 본명이며, 그는 중국공산당 만주성위 산하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총사령 자오샹지(趙尙志, Zhao Shangzhi, 1908~1942)의 신임을 받던 최측근 인사였는데, 1937년 전사했다. 박상실이 공도진(이복림)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김좌진은 사망하기 직전 “할 일이…. 할 일이 너무도 많은 이때에 내가 죽어야 하다니. 그게 한스러워서….”란 말을 남겼다. 사후 3년 뒤, 아내 오숙근이 유해를 수습하여 고향 홍성에 임시로 매장하였다가 해방 후 김두한에 의해 정식으로 안장되었다.

장사지낼 때 중국인들은 ‘고려의 왕이 죽었다’고 애도하였다. 그는 진정한 대한독립의 영웅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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