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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오늘사건] 1919년 2월 1일

무오독립선언을 하다

by 나그네

1919년 2월 1일 만주 지린에서 만주와 연해주 및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 중인 독립운동가들 39명의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이때가 음력으로 기미년인 1919년 1월 1일인데, 선언서의 작성과 서명이 그 이전에 이루어졌음을 고려하고, 기미독립선언과 구별하기 위해 '무오독립선언'으로 불린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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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독립선언 직후 조소앙은 일본 도쿄로 건너가, 유학생인 백관수, 이광수 등을 지도하여 2·8 독립 선언을 발표하도록 하였다. 이 선언의 영향을 받아 당시 한성(=서울)에서 손병희 등 민족대표 33인의 기미독립선언과 함께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무오독립선언서는 조소앙이 기초하였으며 사기와 강박으로 이루어진 일본과의 병합(한일병합조약)은 무효이며, 육탄혈전으로라도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무오독립선언이 국내의 기미독립선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으나, 가장 앞선 독립선언이며, 연서자들의 활동상과 공헌이 저평가되었다. 기미독립선언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 중 조국 광복을 본 사람은 15인인 데 비해, 평균연령이 5세나 적은 무오독립선언 연서자들은 39인 중 불과 11명만이 광복을 맞았다. 무오독립선언 연서자들이 조국 광복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투쟁했는지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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