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론의 선두주자, 후쿠자와 유키치 사망하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 민중은 개, 돼지와 같다라고 말한
그런데, 그 말의 시초가 따로 있었으니...
사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정한론을 실현시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초창기에 조선은 그의 눈에 차지도 않은 국가였다.
운요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을 맺게 되었을때도
라며 떨떠름했을 정도니까
그런 그가 정한론에 온 몸을 바치게 되는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갑신정변'이다
갑신정변의 아이콘 김옥균이 후쿠자와 유키치를 만난 건 임오군란 사후 문제로 방일했을때였다
이때 김옥균은 후쿠자와 유키치와 만나 대화를 하면서 그의 숭고하고 높고 맑은 정신에(?) 탄복하며
'내가 일본에서 신선을 만났다'라고 극찬을 하며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후쿠자와 유키치 또한 그런 김옥균을 높이 평가하여 아끼게 되고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칼, 총, 폭탄 등 무기와 민병대를 모아 보내주려고까지 하였다
물론, 이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서 저지당하긴 했지만
이토 히로부미가 이를 저지한 이유는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런 나라에 굳이 일본의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라는 이유였긴 하지만
자신이 아끼는 수제자의 조선을 향한 개혁이 실패하자 이때부터 정한론에 매진하게 되는데
그가 갑신정변 실패 이후 한 발언을 보면
이처럼 아주 극단적으로 치우치게 되어버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후쿠자와 유키치와 이전 정한론자와의 차이점이 있는데
이전 정한론자는 임진왜란처럼 중국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조선 정벌을 논한거라면
후쿠자와 유키치는 조선의 멸망과 중국의 점령을 별개로 놓아두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주변국가들을 평가하기를
조선은 시바세계에 현신한 지옥과 같은 나라고
청나라는 돼지, 그것도 꼬리에 속하는 별볼일 없는 족속이며
대만은 정제되지 않은 오합지졸 좀도둑때에 불과하다
라고 하면서 일본은 문명의 민족이기에 이런 뒤떨어지고 천박한 아시아를 벗어나야 한다는
탈아론을 천명하며 일본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게 된다
1884년 갑신정변 실패 이후 일본의 제국주의 기조를 설파하고
조선의 멸망, 중국의 점령, 탈아론을 내세우며 급진 개화파의 빛으로 추앙받던 후쿠자와 유키치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세상을 떠난 날이 1901년 2월 3일이다
이때 춘원 이광수는 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