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 공신 권람, 졸하다
권람(權擥)은 조선 초의 문신, 역사학자, 작가, 문인이다. 자(字)는 정경(正卿), 호는 소한당(所閑堂) 또는 소한당(所閒堂), 후주당(後週堂)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으로 권근의 손자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불우한 청년기를 보내다가 한명회와 교유했고, 그를 통해 신숙주 등을 소개받고 수양대군의 측근이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냈으며, 그 이듬해에는 수양대군과 함께 《역대병요》를 편찬하였다. 1453년(단종 1년) 김종서를 몰아낼 때 앞장섰던 공으로 정난공신 1등관으로 녹훈되고, 승정원우부승지에 특진되었다. 1455년 세조 즉위 후, 수충위사협책정난동덕좌익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同德佐翼功臣) 1등관으로 이조 참판 길창군이 되었고, 1458년(세조 4년)에는 수찬관으로 신숙주 등과 함께 《국조보감》을 편찬하는데 참여하였다. 그는 활을 잘 쏘았을 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뛰어났으나, 횡포가 심하고 많은 축재를 하여 여러 번 탄핵을 받았다. 우찬성과 좌찬성,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길창부원군으로 진봉되었다.
태종의 외손자 남이(南怡) 장군과, 훗날 연산군의 처남이자 중종의 장인이 되는 신수근이 모두 그의 사위였다. 시호는 익평(翼平)이다.
세조 즉위 이후 훈구 집권 시기에는 평판이 좋았으나, 선조 즉위 이후 사림이 집권하고 나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다가 대한제국 이후부터 평판이 좋아지기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에 이르면 그가 지은 사서인 ‘응제시주’에서 조선이 대대로 개국시조로 모셨던 기자조선과 달리 거의 유일하게 단군을 개국, 민족 시조로 기술한 역사서로 인하여 재평가 되고 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날이 1465년 2월 6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