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층 스캔들 정인숙 피살사건이 일어나다
1970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부근의 강변 3로에 멈춰 서 있는 검정색 코로나 승용차에서 권총에 넓적다리를 관통당해 신음하고 있는 한 사내와, 머리와 가슴에 총을 맞아 이미 숨진 한 젊은 여인이 발견되었다. 부상당한 사내는 정종욱(당시 34세), 숨진 여인은 정인숙(당시 25세)으로 두 사람은 남매였다.
당시 26세였던 정인숙에게는 3살 된 아들이 1명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이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정인숙의 집에서 발견된 정인숙의 소지품에서 정관계 고위층의 명함 26장이 포함된 33장의 명함이 쏟아져 나왔는데, 명단에는 박정희, 정일권, 이후락, 김형욱 등 대다수 5.16 주체세력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후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해졌고 언론 보도가 수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언론은 정인숙에게 숨겨진 아들(정일성, 정성일, 또는 박승일(68년 3월생))이 하나 있고, 그 아들은 당시 청와대 고위층의 자녀라는 소문과 정인숙이 당시 정관계 고위층 전용이라 할 수 있는 고급 요정 '선운각'을 드나들었다는 것 등을 밝혀냈다.
1주일 후에 나온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오빠 정종욱인 것으로 밝혀졌다. 정종욱은 정인숙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면서 정인숙의 문란한 행실을 지적했으나, 정인숙이 말을 믿지 않고 자신에게 심한 폭언을 가하자 가문의 명예를 위해 누이동생을 암살하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려 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권부의 압력에 의해 흐지부지되었다고 하며 사건의 진상은 현재까지도 밝혀진 것이 없다. 정인숙 살해 사건은 넷째 오빠인 정종욱의 범행으로 일단락되었지만,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으며 의혹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성급히 종결지으려는 수사 태도도 의심을 샀고 정종욱이 사용했다는 권총이 발견되지 않았고, 증거는 오직 정종욱의 자백뿐이라는 점이 의혹을 증폭시켰다.
특히, 아이의 친부라는 의심을 받은 정일권은 박정희의 호출에 무릎을 꿇은채 정인숙과 사귀긴 했으나 아이의 친부가 아니며, 죽이지도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는 이야기까지...
3공화국 요정 정치의 산실로, 당시 3대 요정으로 불렸던 선운각(나머지 2곳은 삼청각, 대원각) 에이스 정인숙이 피살된 날이 1970년 3월 17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