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가 창간되다
동아일보는 김성수를 대표로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 '민주주의 지지', '문화주의 제창'이라는 사시 아래 창간되었다. 초대 사장은 박영효였고, 초대 주필은 김성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브나로드 운동, 연정회, 신간회 운동 등을 지원하였다. 일장기 말소 사건을 계기로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이 된 그 해인 1940년 초 일제가 동아일보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우려했음을 보여주는 비밀 문건들이 공개되기도 했다.
해방 직후부터 우익 정당 한국민주당과 민주당 성향의 논조를 보여 왔으며, 1960년대에는 반독재, 민주언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 중반 무렵에는 두 차례의 기자 대량 해고사태와 광고탄압으로 광고 중 98%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의 시기에는 19~23일 초기 5일 동안 무사설(無社說)로 저항하였고, 1987년 박종철 고문 사건 연속 특종보도로 6월 민주항쟁을 촉발시켰으며 1987, 1992년 선거 당시 김대중 성향을 보임에 따라서 김영삼 정부 때까지 대표적인 야당지로 구분됐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 시기 대북 정책과의 갈등을 시작으로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와 김병관 명예회장의 배우자 안경희(安慶姬)의 자살 사건으로 논조가 크게 달라졌다. 이후 조선일보, 중앙일보와 함께 보수계열을 대변하는 언론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김대중의 민주당을 지지해 온 사주라는 점 때문에 조선일보와는 전혀 다른 보수의 길을 걷었다.
과학대중잡지인 '과학동아'를 비롯한 '신동아', '여성동아', '어린이동아', '스포츠동아'등 월간 및 주간잡지와 단행본을 발행하고 있다. 또한 뉴미디어 사업의 일환으로 동아닷컴 과 온라인 교육회사인 디유넷을 운영하고 있다. 1993년 4월 1일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했다.
요즘에는 조중동과 엮이어 욕을 먹고 있는데 동아일보는 사주가 친일파 박영효인데다가 친일로 의심(?)되는 주필 김성수가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1916년 사장직에 취임한 이래 30년간 동아일보를 이끈 독립운동가 송진우의 사상이 물씬 묻어난 동아일보는 민족언론지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손기정 일장기 삭제사건으로 정간이 되자 사장 송진우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설립운동, 브나로드 운동 등을 이끌어 나가며 동아일보를 세운 건 김성수지만 동아일보를 만든 건 송진우라는 평가가 나오는 건 그런 이유다.
모두의 평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같은 보수 언론지이지만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와 함께 묶어 보기에는 서로의 결이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묶인 것은 2000년 10월 25일 한겨레 정연주 논설주간의 칼럼에서 출발한 단어인 셈. 족벌 언론을 싸잡아 일컫기 위해서 만든 단어로, 2000년 이전에는 쓰인 적이 없는 단어였던 셈. 참고로 정연주 주간은 동아투위 출신으로, 한겨레 주간을 거쳐서 KBS 사장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 동아일보가 창간된 해가 1920년 4월 1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