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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오늘사건] 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 전쟁이 일어나다

by 나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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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가 자국과 가까운 포클랜드 섬(혹은 말비나스 섬)을 '회복'하겠다고 선언하며 침공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2개월 만에 아르헨티나군의 항복으로 종료되었으며, 이로 인해 갈티에리의 군사독재정권은 실각하게 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라고 부르는 이 섬은 1690년 영국의 존 스트롱이 처음으로 상륙한 기록이 있다. 1764년 프랑스가 정착을 하여 살게되고, 이후 1766녀니 이섬의 권리를 스페인에게 판다.


1766년에 영국인들은 이 프랑스 정착촌의 존재를 모르는 채로 영국 정착촌을 세웠고 프랑스 정착촌을 넘겨받은 스페인과 영국은 전쟁을 할 뻔하기도 했지만 각각 경제적인 이유로 철수했다. 아르헨티나는 1816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당시 스페인의 영토였던 이 섬도 같이 승계했다고 주장했다.


1833년 영국은 해적 행위에 대한 소식을 듣고 주변 해역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전함을 보내서 포클랜드 제도를 군사력으로 점유한다. 그 후 100여 년 동안 영국이 이 섬을 지배한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1946년 이 섬의 영유권을 다시 주장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영국과 갈등을 겪던 아르헨티나는 1982년 4월 2일, 아르헨티나는 이 섬을 '회복'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침공한 후 짧게나마 점령에 성공한다.

20250326_204852.png 포클랜드 탈환작전 성공후 방문한 당시 마거릿 대처 수상

당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총리 마거릿 대처는 아르헨티나에게 포클랜드 섬을 빼앗기자 발빠르게 움직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영국의 편에 서도록 종용했다.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레오폴드 갈티에리는 영국이 포클랜드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으나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으며, 영국은 포클랜드를 마치 자국의 영토와 동일하게 취급하여 아르헨티나와 전면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9405158129e55f6e2cd8f37dcc39112a.jpeg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는 영국인들에게 국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 전쟁으로 영국은 많은 것을 얻었다. 즉 영국민들은 기적적인 결과에 대해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 민족적인 쇠퇴, 실업, 파운드 절하 등의 국내적인 문제는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한편 이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정권은 실각하게 되어 민간인에게 정권을 이양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후 아르헨티나는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p1a3aap1oc1jqleq9klsuvsmoe1.jpg 마거릿 대처는 영국병을 치유했다는 평과 함께 98%라는 말도 안되는 지지율을 얻으며 절대 권력을 쥐게 된다

아르헨티나의 침공에 대해 즉각 무력 대응을 결정하고 군대를 파견하는 결단을 내린 "철의 여인" 대처 수상에 대한 영국인들의 지지는 확고하였다. 결국 대처 수상은 이 전쟁의 해결을 바탕으로 1983년에 재집권하는 데 성공하였고, "철의 여인"의 개혁정책은 계속 추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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